국제물품거래 준거법 ‘CISG’ 피해구제 체크를

대금지급 불이행 등 계약 위반시 특정이행청구, 계약해제, 손배 검토 

 

국제 매매거래에서, 계약내용을 놓고 상이한 법률·제도·관습 등으로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이로 인해 예견하지 못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무역거래 당사자는 매매계약 체결 시 계약서에 분쟁 예방조항을 약정해 분쟁을 차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무역이행 과정에서 발생가능한 모든 상황을 예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역거래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방해할 수 있다.

WTO 통계에 따르면, 2022년도 세계 상품무역의 총거래는 약 24조 달러로 추정되는데, 무역분쟁 발생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연합(UN) 산하 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 미국통일상법전(Uniform Commercial Code, UCC) 제2편(매매)을 기초로 대륙법과 영미법을 조화해 제정한 국제물품 매매계약에 관한 UN 국제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Contracts for the International Sale of Goods, CISG)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 협약은 비엔나협약(The 1980 Vienna Sales Convention)이라고 불리는데, 체약국(Contracting States)은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독일, 프랑스, 중국, 일본 등 97개국이다. 우리나라는 국내계약 관련 규범으로 일반법인 민법과 특별법인 상법이 적용되고, 국제 계약서는 CISG 체약국으로서 동 협약을 준용하며, 헌법 제6조에 근거해 CISG 협약은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갖는다.

국제 물품거래에서 거래상대방이 계약을 위반했을 때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취할 수 있는 법적 구제조치는 무엇일까? 거래당사자간의 계약은 성실하게 이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에서는 고의 또는 과실 등에 의해 계약 이행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CISG에서는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 중 일방 당사자가 계약 이행을 하지 못하는 것을 계약 위반(Breach of Contract)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매도인의 계약위반에 따른 매수인의 권리구제수단과 매수인의 계약위반에 따른 매도인의 권리구제수단은 아래 표와 같다.

 

 

CISG 협약에서 채무불이행 책임은 원칙적으로 무과실책임주의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채무자의 고의·과실을 고려하지 않고, 불이행이라는 사실만으로 책임을 지우고 있다. 따라서 CISG 제80조에서 채무불이행이 상대방의 행위에 기인하는 경우일 때만 면책된다고 규정해 따로 면책조항을 두고 있다. 또한, 계약 상 의무위반이 있으면 최고 또는 이행청구 없이도 규정된 구제수단을 사용할 수 있으며, 계약 불이행 사항이 본질적인가, 비본질적인가에 대한 구분만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질적 계약 위반이란 무엇인가? CISG 제25조에 따르면,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을 주는 경우를 본질적 계약 위반(fundamental breach)이라고 한다. 다만, 위반 당사자와 동일시되는 합리적인 사람의 기준에서 예상이 불가능했을 경우에는 본질적인 위반으로 보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이 있다. 즉, CISG는 계약의 피해 당사자는 위반 당사자의 본질적 계약 위반의 경우로 한정해 계약해제권을 즉시 행사할 수 있으며, 이러한 해제권은 매도인과 매수인이 모두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또한, CISG의 본질적 계약 위반은 ‘실질적 피해(substantial detriment)’를 조건으로 하는데, 이는 손실의 정도에 의해서만 결정될 뿐만 아니라, 매매계약에서 정한 상대방의 이익을 고려해 결정돼야 한다.

그리고 위반사항은 계약의 본질적 내용(essential content)과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 본질적 계약 위반의 예로는 ▲기한이 계약에서 중요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기한을 위반한 경우, ▲계약 목적물에 제3자의 지식재산권 등에 대한 침해요소가 있어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 등 매수인의 사용에 중대한 장애가 있거나, ▲기한이 도래하기 전이라도 당사자 일방이 이행을 거절하는 등 명백히 불이행이 예상되는 경우 등이다.

매수인의 하자 통지의무에 관해 우리나라 상법은 “상인 간의 매매에 있어서 매수인이 목적물을 수령한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검사하여야 하며, 하자 또는 수량의 부족을 발견한 경우에는 즉시 매도인에게 그 통지를 발송하지 아니하면 이로 인한 계약해제, 대금 감액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상법 제69조)”고 규정해, 상인 간의 매매에 대해서만 하자 통지의무가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CISG 협약은 “구매자는 물품의 적합성 결여를 발견했거나 발견했어야 할 합리적인 시간 내(within a reasonable time)에 적합성 결여의 성격을 명시하여 판매자에게 통지하지 않으면 물품의 적합성 결여에 의존할 권리를 상실한다”고 규정(CISG 제39조)해, 매수인에게 하자 통지의무를 지우고, 의무자의 범위를 더 넓게 설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요약하면, CISG가 준거법으로 적용되는 국제물품매매계약에서 매수인은 계약과 협약에 따라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고,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에는 그 지급을 위해 계약 또는 법령에서 정한 조치를 준수할 것이 포함된다. 또한 당사자 일방의 계약위반이 그 계약에서 상대방이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할 정도의 손실(detriment)을 상대방에게 주는 경우 이는 본질적인 계약 위반이 돼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따라서 무역계약의 당사자들은 매매계약서에 CISG와 같은 준거조항을 삽입하고, 계약물품의 인수 거절은 물품대금의 회수 불이행 등 계약 당사자의 계약 위반으로 계약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바를 실질적으로 박탈당할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면 무역계약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특정이행청구, 계약해제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조선대학교 김진규 교수, 관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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