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넥스트 반도체’로 꼽히며 수출 효자품목 역할을 해오던 배터리 수출이 전기차 캐즘과 트럼프 2.0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배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특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정책금융 자금 지원을 확대해야 하며, 국가 R&D 예산을 증액하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생태계 강화를 위해 배터리 수거-진단·검사-재사용-재활용 등 각 단계별 지원 정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재범 포스코 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민주연구원과 민주당 경제안보특별위원회가 최근 개최한 ‘트럼프2.0시대 통상산업정책 연속경청간담회:이차전지’에서 이를 제안했다. 박 연구원은 ‘K-배터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제언’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증가하면서 이차전지는 한국의 미래 핵심 먹거리 산업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배터리 산업 환경=글로벌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연평균 10.3%씩 성장해 2040년 1050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차전지 전후방 산업에는 다수의 국내 기업이 포진돼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배터리 시장 환경은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다. 주요 원인으로는 충전 인프라 부족, 내연기관차 대비 전기차의 총소유비용(TCO) 경쟁력 열세 등이 꼽힌다.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얼리어댑터의 호기심은 충족시켜줄 수 있지만,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는 일반 대중에게는 제품 성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차전지의 신시장이나 수요처를 확보해야 하는 새로운 도전에도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는 2020년까지 에너지저장장치(ESS) 설치 규모 1위를 기록해왔지만, 화재 이슈와 보조금 일몰 등의 원인으로 현재 관련 시장은 위축돼있는 상황이다. 박 연구원은 “글로벌 ESS 시장은 2030년까지 445GWh로 2023년 대비 약 4.6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신재생에너지 병행설치, 인센티브 등의 정책 지원으로 성장을 견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중국이 자국 공급망에 특화된 다양한 소재를 기반으로 이차전지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며면서 국내 기업들의 입지가 약화돼 있다.
또 차세대 전지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어 안정성과 성능, 가격경쟁력을 갖춘 차세대 배터리 개발은 이차전지 업계가 직면한 도전 과제다. 또, 전기자동차 폐배터리의 재제조·재사용·재활용 등 순환경제를 구현하고, 공급망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는 사용후 배터리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자국 공급망 우선주의로 어려움 가중=박 연구원은 미중 갈등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권역화, 주요국의 전치차·배터리 지원 등 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돼 우리 배터리 기업의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국 공급망 우선 정책 심화는 K-배터리의 확장성을 제한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은 미국 내 생산 밸류체인을 구축하기 위해 미국 진출기업에 대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내 이차전지 및 소재 생산 25개 프로젝트에 총 30억불(약 4조원)을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미국 에너지부와 국방부는 자국 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미국 소재·광물 기업에 다양한 형태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전기차 보조금을 약 1조6700위안(310조원)을 지원했다. 세계 최대 전지업체인 CATL에 대해서는 2011년 설립 당시부터 각종 지원을 했으며, 보조금 지급 총액만 8억1000만 달러에 달한다. 또, 전고체 배터리(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로 이뤄진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약 1조1500억원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한국은 차세대 배터리 지원을 위해 2024~2028년 사이 총 1172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일본 또한 배터리 산업 주도권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은 민관 협력으로 일본 내 배터리 공급망 구축에 총 1조엔을 투자할 예정이며, 정부는 이중 3500억엔을 보조한다. 이차전지 생산설비 도입을 위해서는 2300억엔을 지원하고 ESS 도입에 대해서도 3개년에 걸쳐 400억엔을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배터리 부품·소재 기업이 생산설비를 신설하거나 증설할 경우 개별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K-배터리 경쟁력 강화 맞춤형 정책 필요=박 연구원은 이처럼 해외 기업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이차전지 산업 변화 속에서 우리 배터리 기업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맞춤형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주요국이 이미 국가가 개입하는 산업정책 패러다임으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정부의 민간주도 성장 기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우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자금조달에 애로를 겪고 있는만큼 정책금융 자금 지원을 확대하고 지원요건을 완화할 것을 제안했다. 2018년 ESS 화재 사고 이후 과도한 규제 및 인센티브 축소·폐지로 관련 산업이 위축된 상황에서, 향후 ESS 시장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활성화 정책도 필요하다고 했다.
또 국내 국가첨단전략산업의 전체 R&D 예산 1억984억원 중 배터리 산업에 배정된 예산은 525억원으로 타 산업 대비 낮은 수준이라며, 국가 R&D 예산 증액도 요구했다.
사용 후 배터리 산업을 육성하고 국내 생태계 강화를 위해 배터리 수거-진단·검사-재사용-재활용 등 각 단계별 지원 정책도 마련하고 수혜기업을 확대할 것도 제안했다.
박 연구원은 이와함께 공급망 안정화 선도사업자를 선정해 기업 지원을 확대하고, 특화산업단지 내 전력·용수·폐수처리 시설 등 인프라를 지원하는 한편, 국내외 핵심광물자원 투자기업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국내 투자기업과 일자리 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지원금·보조금 지급, 그리고 한시적 전력요금 인하 혜택 등 지원을 확대할 것도 제안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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