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중소기업 대표님과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품 교육 콘텐츠를 제작하고 계신 그분은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다른 회사의 제품 리뷰를 하면서 그들의 상표를 언급하거나, 교육 목적으로 영화 장면을 활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이는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기업인 및 컨텐츠 제작자들이 공통적으로 마주치는 고민일 것입니다.
◇저작권 공정사용의 이해=이런 고민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사용(Fair Use)’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Section 107 of the Copyright Act)는 특정 상황에서 저작권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의 사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우리 저작권법 제35조의5에서도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에 대한 요건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의 공정사용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입니다. 특히 비평, 논평, 뉴스 보도, 교육, 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때 인정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용 콘텐츠를 제작할 때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활용해 특정 개념을 설명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법원은 저작권의 공정사용을 판단할 때 네 가지 측면을 깊이 들여다봅니다. 첫째로 사용 목적을 살펴보는데, 교육이나 연구 목적이라면 상업적 목적보다 더 너그럽게 봅니다. 마치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는 것과 그 요리를 판매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요. 둘째로 저작물의 성격을 고려합니다. 사실을 다룬 뉴스 기사는 창작성이 돋보이는 시나 소설보다 인용이 쉽습니다. 셋째로 사용한 양을 검토합니다. 전체 저작물 중 얼마나 사용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핵심적인 부분인지를 따져봅니다. 마지막으로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합니다. 원저작물의 판매나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지 살펴보는 것이죠.
◇상표 공정사용의 실제=기업 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기업의 상표를 언급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자사의 서비스나 제품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정비소에서 ‘롤스로이스 전문 수리점’이라고 광고할 때는 해당 브랜드명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합니다. 이러한 상표 사용이 없다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성격을 명확히 전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비즈니스 현장에서 타인의 상표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하지만, 국내 상표법에서는 ‘상표의 공정사용’이라는 개념이 명문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례와 실무적 관행을 살펴보면, ‘상표적 사용’ 여부에 따라 침해 여부를 판단합니다. 우리나라의 이러한 접근방식은 미국 상표법의 공정사용 법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어, 미국의 법리를 참고해 이해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표의 본질적 기능을 알아야 합니다. 상표는 기본적으로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의 출처를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이러한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사용은 ‘공정한 사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상표의 공정사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술적 공정사용(Descriptive fair use)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WD-40 회사가 장기 부식 방지제(WD-40) 제품을 설명하기 위해 부식 방지제라는 뜻의 ‘inhibitor’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 등록 상표 ‘THE INHIBITOR’의 기술적 공정사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정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지명적 공정사용(Nominative fair use)입니다. 이는 다른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상표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수리점에서 ‘벤츠 전문 정비소’ 또는 ‘현대차 부품 취급’이라고 광고하는 것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수리점이 어떤 브랜드의 차량을 수리할 수 있는지 소비자에게 정확히 알리기 위해 필요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용은 상표권 침해가 아닌 정당한 사용으로 인정됩니다.
◇공정사용의 한계와 주의사항=하지만 이러한 공정사용도 무제한적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마치 교통신호를 지키면서 운전해야 하는 것처럼, 공정사용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필요한 만큼만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상표권자나 저작권자와의 관련성을 오해하게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우리 매장의 후라이드 치킨은 BBQ보다 더 바삭합니다’라고 광고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는 객관적인 비교를 위해 경쟁사의 상표를 언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BBQ도 인정한 최고의 맛’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이는 경쟁사가 실제로 인정한 적이 없는데도 마치 인정한 것처럼 허위로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샤넬 스타일 가방’이라며 모조품을 판매하면서 정품 샤넬 제품과 비교하는 것은 공정사용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이는 소비자를 기만하고 유명 브랜드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무 적용을 위한 제언=실무에서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먼저, 타인의 저작물이나 상표를 사용하기 전에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를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필요하다면 다음으로 “어떻게 하면 최소한으로, 그리고 가장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세요. 그리고 사용 과정과 판단 근거를 문서로 남겨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공정사용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의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면서도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공정사용 제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온라인 마케팅, SNS 홍보, 콘텐츠 제작 등 디지털 환경에서는 타인의 상표나 저작물을 언급하거나 활용해야 하는 상황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공정사용은 단순히 법적 제약을 피하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이는 창의적인 비즈니스 활동과 건전한 시장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입니다. 공정사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한다면, 여러분의 비즈니스는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도 더 큰 성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손보남 ㈜인디프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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