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추진중인 상장폐지 요건 강화가 시행될 경우, 한계기업 상당수가 현재보다 이른 시기에 퇴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자본시장연구원이 내놓은 ‘한계기업 증가와 상장폐지 요건 강화의 시사점’ 보고서는, 새로운 상장폐지 요건 중 재무요건만 고려할 경우 “2024년 말 기준, 유가증권시장 기업의 약 8%, 코스닥시장 기업의 약 7%가 최종 상향될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월 금융당국은 자본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고 한계기업의 실효적 퇴출을 촉진하기 위해 상장폐지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현재보다 재무 요건, 감사의견 요건 등을 강화하고, 심의 단계를 간소화하며, 투자자 보호 조치도 강화하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또 “기존 퇴출 심사 과정에서 가장 큰 절차적 지연을 초래한 감사의견 비적정 기업에 대해 개선 기회 부여를 1회로 명확히 제한한 점은 퇴출 절차의 효율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나아가, “투자자의 환금성을 높이고, 시장 신뢰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평가했다.
한계기업 제외시 코스닥 지수 37% 추가상승
보고서는 기존의 상장폐지 제도에 대해 “기업 회생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운영돼 왔으며, 경기 하강 국면에서는 퇴출 요건이 지속 완화되면서 한계기업의 시장 퇴출이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짚었다.
또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의 문제점으로 “한계기업의 주식 수익률은 장기간 시장 평균을 하회하고 있으며, 특히 한계기업 비중이 높은 코스닥시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1년 이후 매년 6월을 기준으로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을 지수에서 제외하고 이를 재산출할 경우, 2024년 6월말 기준 코스닥 지수는 37% 추가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상장폐지 요건을 일률적으로 높이는 것은 한계기업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간재 수출 중심의 경기순환형 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한계기업을 적기에 판별할 수 있는 요건을 설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필연적으로 정상기업을 한계기업으로 오인하는 중대한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장 내 경쟁을 촉진해 생산성이 낮은 기업이 시장 규율을 통해 신속히 퇴출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정부 및 금융기관의 지원 관행에 대해서도 재검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취약 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은 기업의 생산성과 업종 내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고려해 보다 선별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회생 기업에 대한 정책 금융과 한계기업에 대한 대출 관행도 비효율성을 초래하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장폐지 과정에서 기업이 관련 정보를 충실히 공시하도록 유인 체계를 확립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퇴출 심사 과정에서 개선계획의 주요 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한 점은 투자자에게 긍정적이지만, 기업이 불리한 상황을 왜곡없이 투명하게 공시할 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다라서 공시의 신뢰성과 충실도를 높일 수 있는 보완책 마련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 역시 정교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특히, 청산가치 미만으로 거래되는 자산주의 퇴출 시, 기업의 본질가치 대비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서 정리매매가 이뤄질 가능성”을 제기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자산주의 저평가 현상이 합리적으로 해소될 수 있도록 M&A 압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일반 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아울러, “일부 기업이 시가총액 미달 기준을 벗어나기 위해 무분별한 M&A나 유상증자를 시도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금조달의 목적성과 투명성에 대한 외부 감시 체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규시장에서 상장이 폐지되더라도 거래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장외시장의 거래 기반을 확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면서, 상장폐지 기업의 거래를 지원하는 미국과 같은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보고서는 “이번 상장폐지 요건 개편은 퇴출 기준을 강화하고, 절차를 효율화함으로써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중요한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퇴출 제도 개선만으로 한계기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시장 규율을 강화하고 제반 환경을 보완하는 정책이 뒤따를 필요가 있다”며 한계기업 문제의 구조적 완화와 시장 경쟁력 강화를 주문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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