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이름 아래 배우고 아는 것이 많아졌다

나의 삶이 변화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생애와 삶 역시 변화 

 

태생적으로 나는 혼자 작업하거나 전시를 보고, 글을 쓰며,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다. 어쩌면 여러 복잡하고 피로한 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이기적인 습성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 학기를 마치고 논문을 쓰기 시작한 시절, 매일 점심 무렵에 아무도 없는 작업실로 향했다. 커피 한 잔을 내리고 엉덩이가 편한 빨간 소파에 오래 앉아 있거나, 책상에 기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느꼈다. 바깥을 보면 점심을 먹으러 나온 관광객과 직장인들의 모습이 보였고 대체로 이런 하루가 반복됐다.

 

글보다는 주근깨가 늘어가던 시절. 글 쓰는 일과 앉아 있는 일 외에는 좀처럼 다른 걸 할 수 없던 날들. 그 시기, 내게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글 쓰는 동료를 만난 일이다. 읽고 쓰는 시간이 좋았고, 어쩌다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고, 나는 ‘마코(Making Connection)’라는 동시대 미술과 현장을 연구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다.

 

당시 마코는 김준혁, 김진주, 박유준 세 사람이 활동하고 있었고, 미술작업을 하는 나와 미술비평, 전시기획 그리고 독립연구를 진행하는 이민주가 2021년 여름에 합류했다. 구성원들은 모두 천착하거나 깊이 알고자 하는 주제가 있었고, 관련한 글을 쓰고 웹을 통해 발행했다. 예컨대 김준혁은 미술시장과 예술작품의 관계를, 김진주는 아주 먼 시간에 만들어진 예술품부터 동시대 회화와 물질문화 등에 관심이 있었다. 박유준은 예술경영과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돌아보는 글을 연재했다.

 

그때의 나는 작품 제작과 더불어 현장에서 경험한 여러 일을 바탕으로 ‘매개와 중재’라는 주제를 펼쳐놓고 싶었고, 그와 별개로 글쓰기에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허나, 쓰고자 하는 마음과 제대로 그 일을 수행하는 능력에 격차가 있었으므로 대체로 나는 부족한 글을 쓰곤 했다. 삐뚤빼뚤한 글이 좋을 때도 있지만, 어떤 글은 정확한 양식과 형식을 갖춰야지만 비로소 읽힌다. 그간 나는 원하거나 느낀 걸 담아내는 글을 쓰는 데에는 익숙해 ‘나’를 위한 글과 말을 짓는 시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연구 공동체 안에 놓인 나의 글은 대체로 삐뚤빼뚤했으며, 마음과는 다르게 어쩐지 내 글의 흠결 때문에 글 쓰는 일이 어려웠다.

 

 

문장을 쓰고, 지우고, 여러 번 단어를 바꿔봐도 글을 발표하는 일은 쑥스러웠고, 중간 마감일이 다가올 때면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첫 글을 완성해 공유했을 때 다른 사람이 글을 읽고 검토해 주는 편집과정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구글 문서를 통해 달린 100여개의 수정 제안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살펴보는 일도 수고스러울 텐데 왜 그렇게 많은 제안을 달아서 보내 주느냐고 생각했다. 언급하기 부끄럽지만, 그 당시에는 책이나 다른 출처에서 인용한 문장의 정확한 출처를 밝히는 일도 서툴렀다. 밝힐 수 없는 부분은 어떻게 남기거나 수정해야 하는지. 그 간단한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몰라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저 마음 쓰이는 것을 형태로 짓고 이를 글로 바꾸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내가 형식과 격식에 관해 하나씩 배워나갔다. 그사이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어보기도 했고, 생소한 글에 녹아 있는 타인의 시간을 내 시간 위에 포개보기도 했다. 전시에 참여하고, 그간의 글을 엮어 한 권의 책을 만들기도 했다. 모든 활동이 도전이었다.

 

마코 활동을 지속하며 무지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으나, 스스로를 존엄히 여기는 마음은 다치지 않았다. 기실 글을 쓰거나 작품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상처를 입는 상황이 바로 자신에 대한 존엄이므로. 나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내게 중요한 것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워나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했다. 생소한 세계에 스며 들어가는 과정은 얼마나 지난하고 즐거웠던지. 시간을 천천히 쌓아내다 보니 약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미술 현장 속에서 내가 흥미로워하는 사람, 작품, 이야기에 관해 쓸 수 있었고 함께한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이 과정은 단순히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다 알고 있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다 알 수 없음’의 세계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알 수 없는 것이 많아질수록 우리라는 이름 아래 배우고 아는 것이 많아졌다.

 

최근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코와 비평 웹진 abs(앱스)의 구성원들이 모여 미술계 구성원들의 일과 역할을 되짚는 ‘포지셔닝 워크 위크’(2025년 2월23일~2월24일, 수건과 화환, 서울)라는 행사를 공동기획·진행했다. 내 오랜 친구이자 앱스의 유진영과 함께 ‘공동체의 일’이라는 발표를 준비했고, 익숙하지만 잘 모르겠는 개념인 공동체와 함께하는 일에 관해 발표했다.

 

행사를 준비하는 기간 내내 함께 하는 일의 기쁨과 어려움을 생각했다. 여러 사람이 더 오래 함께할 방법을 대담했다. 가족, 학교, 사회, 동료.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과 내가 속한 이 미술 공동체는 무엇이 다른가. 기존의 공동체들이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라면, 이곳은 서로를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자발적인 공동체였다. 우리는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우리’라는 이름을 선택했고, 그렇기에 이 공동체의 시간은 자신의 것인 동시에 동료들과 포개어 만든 시간이기도 하다. 나의 삶이 변화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생애와 삶 역시 변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시간을 더욱 귀하게 여기자는 다짐을 해본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박선호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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