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특허·상표 출원과 같은 지식재산 확보 활동에 주력할 경우, 엑시트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지식재산 활동을 제대로 외부에 알리지 않아 기업가치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국가지식재산위원회와 특허청이 한국지식재산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의뢰해 수행한 ‘초기 창업기업(스타트업) 자금조달과 특허·상표의 중요성’ 연구보고서는 1999~2025년 사이 2615개 스타트업의 투자 정보와 특허·상표 출원 데이터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스타트업이 특허·상표 출원 활동을 선행하면 자금조달 가능성이 특허·상표 출원 활동을 하지 않은 경우보다 시드단계에서 1.7배 더 높았다. 또 초기단계(시리즈A~B)에서 3.1배, 후기단계(시리즈C~)에서는 최대 6.3배까지 늘어났다. 후기단계에서 특허·상표 출원 활동을 국내에서 해외까지 확대하는 경우에는 자금조달 가능성이 7.1배까지 커졌다.
자금조달뿐만 아니라 엑시트 가능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스타트업이 특허·상표 출원 활동을 선행하는 경우 투자금을 회수하는 기업공개 또는 인수합병 등 엑시트 가능성도 2배 이상 증가했다. 국내외 특허·상표를 20건 이상 출원하는 경우에는 기업공개 또는 인수합병 등 엑시트 가능성이 최대 5.9배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처럼 자금조달부터 엑시트까지 지식재산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막상 상장사들의 지식재산 관련 공시 수준은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공시제도는 지식재산의 기업가치 반영에 한계
자본시장연구원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지식재산 비재무정보 공시 활성화의 필요성’ 보고서는 “많은 기업이 지식재산권 보유 개수나 연구개발 조직 현황 같은 단편적이고 형식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데 그치고 있어, 외부 투자자들이 기업가치를 적절히 평가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진단했다.
현행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은 사업보고서 상 ‘사업의 내용’에 기술제휴 및 라이선스계약을 포함한 경영상의 주요계약, 연구개발 활동의 개요·조직·비용·실적, 그리고 기업이 보유한 주요 지식재산권에 대한 내용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실제로는 상당수의 기업들이 관련 내용을 공시하지 않거나, 구체적인 설명 없이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분석했다.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 자체에도 문제점이 있다. 현재는 ‘사업의 내용’ 중 ‘주요계약 및 연구개발 활동’ 항목에 경영상의 주요계약과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내용을 함께 기재하도록 하고 있으며, 주요 지식재산권 보유 현황은 ‘기타 참고사항’에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경영상의 주요계약에는 기술 관련 계약뿐 아니라 주식양도계약, 임대차계약 등 다양한 비(非)기술계약이 포함”되며, 이로 인해 “‘주요계약 및 연구개발 활동’ 항목 내에 연구개발 활동과 무관한 계약 정보가 혼재돼 공시되는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연구개발이나 지식재산 관련 정보가 사업보고서 내 여러 항목에 분산되거나, 다른 정보와 섞여서 제시되면서 정보의 맥락과 일관성을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보고서는 “연구개발 활동과 주요 기술, 지식재산 관련 현황이 하나의 항목에 통합되어 일관되게 제시될 수 있도록 공시 항목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며, “이러한 개선은 기업의 지식재산 관련 정보의 전달력을 높이고, 투자자의 이해도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제언했다.
현행 회계기준의 한계도 있다. 현재는 연구개발비 중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비용으로 인식된다. 회계상 자산화가 제한되기 때문에, 기업이 그간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 등이 재무제표에 제한적으로 반영된다. 무형자산의 식별과 가치측정의 어려움 등에 의해 발생한 문제인데, 기업의 실제 가치창출 노력과 재무정보 간의 괴리로 연결된다.
보고서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무형자산에 대한 비재무정보 공시가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하며, 해외연구를 근거로 제시했다.
서술적 공시를 통해 R&D 활동에 대한 맥락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정보비대칭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나, 연간 공시보고서 상 무형자산 관련 서술적 공시가 성공적인 무형자산 창출에 대한 가치 관련 정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실증 연구결과 등이 예시다. 보고서는 “이러한 연구들은 투자자들이 기업의 미래 성장동력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비재무 정보, 특히 서술적 정보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는 지식재산 등 무형자산 공시 구체화 추세
지식재산 공시제도의 재편은 최근 주요국들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추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2020년 관련 규정을 개정해, 경영진 논의 및 분석(MD&A) 항목에서 중대한 현금 요건을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보고서는 “이 개정의 취지는 인적자본 및 지식재산 등 무형자산에 대한 지출의 중요성을 반영해, 유형자산뿐 아니라 무형자산 관련 주요 지출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공시 범위를 확대하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SEC는 이러한 정보 공시강화가 기업과 투자자 간의 정보비대칭을 완화하고,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며, 유동성과 자본시장 접근성을 향상시켜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은 2021년 6월 관련 규정 개정을 통해, 상장기업이 인적자본 및 지식재산에 대한 투자정보를 자사의 경영전략과 연계해 구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또 이사회는 이러한 투자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감독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도 규정에 포함했다. 2022년에는 지식재산과 무형자산의 투자전략 공시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했고, 2023년에는 실제 적용과정을 반영해 이 가이드라인을 개정했다.
싱가포르의 경우, 2023년 9월 무형자산 공시 프레임워크를 개발했다. 무형자산의 분류 범주를 제시하고, 기업 전략 및 가치 창출 과정과의 연계성을 기반으로 무형자산을 공시하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보고서는 “기업가치 창출에서 지식재산 등 무형자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재무정보는 그 가치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이것이 기업과 투자자 간의 정보비대칭을 심화시켜 기업가치의 과소평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또, 이같은 문제를 완화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식재산에 대한 비재무정보 공시의 강화가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제도적 기반 강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기업이 자사의 핵심 지식재산과 가치창출과의 연계성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공시한다면, 정보비대칭 문제를 완화할 수 있으며, 투자자들은 기업의 혁신역량과 미래 성장잠재력을 보다 원활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지식재산 공시 활성화 방안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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