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업체만 변경 수년 근무…갱신기대권 인정

법원 “1인의 평가만을 근거로 한 갱신거절 통보는 객관적 평가 아냐” 

 

건물주나 사업장에서 직접 청소노동자와 경비노동자를 고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건물의 청소와 경비 등의 업무는 대부분 외주화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이처럼 건물의 관리를 위탁받아 운영하는 용역업체는 자주 바뀐다. 대부분 입찰의 형태로 최소용역비를 제시한 업체에 일을 맡기기 때문이다.

 

 

용역업체가 변경되면 기존 용역업체와 근로계약한 노동자들에 대해 새롭게 용역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 업체는 법적으로는 고용승계의 의무가 없다. 그러나 산업현장에서는 대부분 기존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새롭게 용역 업무를 수행하는 업체가 고용승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업무의 연속성 때문인데 관리 업무를 위탁하는 사업주나 건물주 역시 이들의 고용승계를 수탁 조건으로 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새롭게 용역 업무를 수행하게 된 용역업체가 고용승계한 이들에 대해 근로계약 기간을 정하고 근로계약 기간 만료 이후 갱신을 거절한다면 이는 정당할까?

 

새로운 용역업체가 이전 용역업체로부터 고용승계한 노동자 중 일부에 대해 업무평가 등을 통해 근로계약 갱신 거절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제반 사정에 비춰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면 근로계약 만료를 이유로 갱신을 거절한 사용자의 행위는 부당해고가 된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한 사업장에서 미화 업무를 위탁받은 특정 용역업체가 고용승계한 미화 노동자에 대해 소장 1인에 의한 업무평가 결과를 근거로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자, 이에 대해 해당 미화 노동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사건에 대해 “사업장에서 소속 용역업체만을 변경하면서 수년 이상 근무한 경우 근로계약에 관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며 노동자의 손을 들어 줬다. 또한 “평가자 1인의 평가만을 근거로 한 갱신 거절 통보는 객관적이고 합리적 평가로 볼 수 없다”라고 판결(서울행법 2024구합86628. 선고일자 2025.8.14.)했다.

 

사건의 경위=원고는 2020년 6월부터 2023년 12월18일까지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물류센터에서 미화원으로 파지 및 수거 등 업무를 수행한 노동자이다. 원고는 2020년 6월경부터 2022년까지는 D 용역업체 소속으로 근로 제공했고, 2023년 8월까지는 E 용역업체 소속으로 근로 제공했다. 2023년 9월1일부터는 물류센터의 파지 및 수거 등 업무를 수행할 용역업체가 피고 보조참가인(이하 참가인)으로 변경되면서 원고는 참가인과 2023년 9월부터 그해 12월까지 4개월로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종전과 동일하게 이 사건 물류센터에서 미화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2023년 12월18일경 참가인은 원고에 대해 업무평가 결과 2023년 11월14일자 무단퇴근, 동료 직원 등에 대한 지속적 근로의욕 저하 발언, 관리자 및 나이 어린 직장 동료 등에 대한 지속적 반말 사용 등을 사유로 근로계약 종료 및 재계약 거절을 통보했다.

 

이에 원고는 2024년 3월26일 이 사건 갱신 거절 통보가 부당해고라 주장하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였으나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원고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라며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원고는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원고의 갱신기대권은 인정되나 참가인이 원고에 대한 근로계약 갱신 거절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원고의 재심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원고는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서울행정법원에 재심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당사자의 주장 및 쟁점=원고는 2020년 6월부터 계속하여 이 사건 물류센터에서 동일 업무를 수행해 왔고, 참가인이 원고의 경력을 고려해 원고를 채용하였으며 참가인이 이전 용역업체로부터 고용승계한 기간제 근로자 중 85%가량은 근로계약이 갱신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에게 이 사건 근로계약에 관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갱신 거절의 합리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참가인의 원고에 대한 업무 적정성 평가와 관련하여 참가인의 평가가 자의적이고 편향되었다고 비판하며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참가인 회사는 원고와의 근로계약이 4개월로 매우 짧으며, 원고와의 근로계약에서 원고의 갱신기대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 점을 들어 갱신기대권의 존재를 부인했다. 또한 원고의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참가인의 원고에 대한 업무 적정성 평가가 평가 항목과 평가 요소에 있어 객관성과 합리성이 있는 만큼 평가 결과가 불공정하거나 부당하다 보기 어렵고, 원고의 무단퇴근, 동료 근로자에 대한 근로의욕 저하 발언, 관리자 등에 대한 지속적 반말 등이 합리적 갱신 거절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법원의 판결문에 따른 인정 사실=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참가인은 2013년 12월4일 원고와의 재계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이 사건 물류센터 반장 G로 하여금 업무 적격성 평가하게 했다. 이에 따라 G는 평가표를 통해 계약 해지 대상이 되는 최하위 등급인 D등급을 부여했다. G는 원고에 대해 평가자 의견에 “회사의 업무규정에 대해 독선적 사고와 판단을 하는 경향이 심하고, 사무실 분위기 저해로 관리자로서 통솔에 애로가 있으며 고연령자로 체력 문제가 자주 발생하여 계속 근무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된다”라고 기재했다.

 

 

참가인 회사는 G가 단독으로 실시한 업무 적격성 평가를 기초로 원고에게 이 사건 갱신 거절을 통보했다. 이 사건 물류센터 근무 근로자 수는 120명가량인데 그중 최초 근로계약 기간 만료 후 갱신 거절된 근로자는 13명으로 그 외 85% 이상의 근로자들은 근로계약이 갱신됐다. 재판에 제출된 증거자료 등에 따르면 G는 평소 원고에 대해 ‘선배님’이라 호칭하고 존댓말을 쓰며 대화하였고, G는 이 사건 통화 과정에서 원고에 대해 원고가 무슨 문제가 많았고 정말 귀책사유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있었다.

 

사건의 쟁점과 그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이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로 원고가 참가인 회사에 대해 갱신기대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다. 두 번째는 만약 갱신기대권이 존재한다면 참가인 회사의 원고에 대한 갱신 거절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재판부는 원고의 갱신기대권을 인정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1년 판결을 통해 갱신기대권에 대한 법리를 제시한 바 있다. 해당 판결(대법 선고 2007두1729판결)에서 대법원은 “근로계약 등에서 일정한 요건 충족을 전제로 당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거나, 그러한 규정이 없더라도 근로계약의 내용과 근로계약이 이뤄지게 된 동기 및 경위등 당해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요건이 충족되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근로자에게 근로계약이 갱신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여 부당하게 근로계약의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고, 이 경우 기간 만료 후의 근로관계는 종전의 근로계약이 갱신된 것과 동일하다”라고 설시했다.

 

참가인과 원고는 이 사건 근로계약을 통해 ‘갱신기대권’을 인정하지 않기로 정하고, 참가인의 취업규칙 역시 근로자의 갱신기대권은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포함한 수십 명의 근로자들이 소속 용역업체만 변경하여 계속하여 종전과 동일하게 이 사건 물류센터에서 파지 수거 업무를 수행해 왔던 점, 참가인이 이 사건 물류센터에서 장기간 근무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원고를 고용한 점을 들어 재판부는 근로계약이 이뤄지게 된 동기와 경위에서 “갱신기대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인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의 유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례(대법원 선고 20219두45647판결)를 통해 사용자가 근로자의 정당한 갱신 기대권을 배제하고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데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문제가 될 때 그 정당성 요건을 제시한 바 있다.

 

해당 판례에서 대법원은 갱신기대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가 근로계약 갱신 거절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 “사용자의 사업 목적과 성격, 사업장 여건, 근로자의 책임 있는 사유가 있는지 등 근로관계의 여러 사정과 갱신 거부의 사유와 절차가 사회 통념상 객관적이고 합리적이고 공정한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 증명 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고 설시했다.

 

재판부는 해당 법리에 근거해 원고에 대해 업무 적격성 평가를 한 G가 원고와의 통화에서 원고에 대한 평가 중 잘못된 부분을 정정 조치하고 인정한 점등을 들어 이 사건에서 참가인이 원고에게 갱신 거절 통보 사유로 기재한 원고의 2023년 11월14일자 무단퇴근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원고가 동료 직원들에게 “최저시급만 받고 일하니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근로의욕 저하 발언을 지속해서 한 점 역시 평가자인 G가 직접 들은 내용이 아니며 관리자 및 나이 어린 직장 동료들에게 지속적인 반말 사용을 한다는 점도 “원고가 반말하며 다른 동료 근로자의 인격 모독이나 불쾌감을 줄 만한 발언을 했는지 등에 대한 자료가 없어 근무 질서 위해 및 근로의욕 저해 행동을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참가인 등이 원고에 대한 계약 갱신 거절 통보의 합리적 이유로 주장하는 원고의 업무평가 결과가 계약 해지 대상으로 분류되는 최하위 등급에 해당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에 대한 평가 중 잘못된 부분을 단독 평가자인 G가 스스로 정정한 점, 고연령자로 체력 문제가 발생하였다 기재했으나 평가일 당시 업무 수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체력이나 건강 악화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없는 점, 이 사건 평가표 평가 항목이 평가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이에 대해 평가자의 자의적 평가 또는 평가 오류를 보완할 만한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점을 들어 참가인의 원고에 대한 업무 적격성 평가 결과가 계약 갱신 거절의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의 의의=갱신기대권이 있는 노동자에 대한 계약 갱신 거절 사유의 합리성을 사용자에게 입증하도록 한 기존 대법원 판례 법리의 취지는 상대적으로 고용관계에서 열위에 있는 간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번 판결은 이에 충실한 판결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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