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M&A…‘소재·부품·가스’가 시장을 주도

대기업 Carve-out 중심 M&A 잇따라…‘PE→SI 엑시트’도 이어져 

 

반도체 산업이 구조적 성장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M&A 시장에서 반도체 소재·부품·가스를 중심으로 활발한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 설계부터 생산·후공정·판매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게 얽힌 밸류체인(Value Chain) 전반에서 기술 고도화가 본격화되고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투자 매력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일PwC가 최근 발표한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성장과 M&A 동향’ 보고서에서, 박기남 파트너는 “국내 반도체 기업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전공정 소재·부품·가스 분야가 핵심 M&A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 공정 소재·부품·가스가 M&A 중심축=반도체 산업은 종합반도체(IDM), 팹리스(Fabless), 파운드리(Foundry) 구조를 바탕으로 전후방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인텔처럼 설계와 생산을 모두 수행하는 IDM, 엔비디아·퀄컴과 같은 설계 전문 팹리스, 그리고 TSMC·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처럼 생산에 특화된 기업들이 중심 축을 이룬다.

 

각 공정 단계에 필요한 장비·소재·부품·가스를 공급하는 다양한 기업들이 여기에 참여하며 방대한 가치사슬을 구성한다.

 

 

이 가운데 최근 국내 M&A 시장에서 가장 활발한 분야는 전공정 소재·부품·가스라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90% 이상으로 평가되며, 글로벌 반도체 기술이 미세화·고단화로 빠르게 진화하면서 핵심 소재·부품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전공정 소재·부품 분야는 성장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재무적 투자자(FI)와 밸류체인 확장을 노리는 전략적 투자자(SI)가 모두 참여하고 있는 영역이다. SK그룹이 추진한 ‘포트폴리오 리밸런싱 전략’으로 여러 자회사 사업이 매각되면서, 한앤컴퍼니는 반도체 소재·부품 투자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며 시장 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특수가스 PE, 산업용 가스 인프라펀드 선호=전공정 가스시장은 특수가스와 산업용 가스로 나뉘는데, 투자자 유형별 선호도가 뚜렷하다. 특수가스는 희소성과 높은 성장성 덕분에 사모펀드(PE)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산업용 가스는 장기공급계약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할 수 있어 글로벌 인프라펀드가 선호하는 영역이다.

 

후공정 부품 역시 패키징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수요 증가가 예상되지만, 강소기업 중심 시장구조로 인해 고객 기반과 기술 격차가 커 M&A 시너지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성장성은 높지만 거래 활성화 속도는 더딘 편이다.

 

OSAT(반도체 조립·테스트) 분야는 과거에는 수직적 시스템 통합 중심으로 M&A가 활발했으나, 최근에는 글로벌 경쟁 심화와 전방 수요 둔화 영향으로 거래 매력도가 감소한 상황이다.

 

장비 분야는 수주 기반 사업 구조와 높은 CAPEX(설비투자)·운전자본 부담, 고객사 투자 사이클에 따른 실적 변동성 때문에 투자 위험이 높게 평가되면서 상대적으로 M&A가 제한적이다.

 

AI 기술 확산은 산업 전반에서 고성능 반도체 수요를 폭발적으로 키우고 있다. 생성형 AI 서비스 확대, 자율주행 기술 발전,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서버 수요 증가는 반도체 산업의 구조적 성장을 더 가속화하고 있다.

 

박기남 파트너는 “반도체 기술이 EUV 기반 초미세 공정과 고집적 패키징 중심으로 진화하면서 전공정 소재·부품·가스의 전략적 가치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며 “이 분야는 앞으로도 전방산업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국내외 투자자 관심이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기업 Carve-out 중심 대형 M&A 잇따라=최근 국내 반도체 M&A 시장에서 성사된 주요 거래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비핵심 또는 중복 사업을 분리해 매각하는 ‘Carve-out’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SK그룹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포트폴리오 재편 전략을 본격화하며 굵직한 자산 매각을 연이어 진행했다.

 

 

2023년 10월에는 SK엔펄스의 세라믹 부품사업이 3600억원에 매각됐다. SKC가 글로벌 1위 실리콘 러버 소켓 제조사 ISC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재원 마련을 위한 매각이었고, 한앤컴퍼니가 반도체 산업 첫 투자로 이 자산을 인수했다. 이어 2024년 12월에는 SK엔펄스의 CMP Pad 사업이 3410억원 규모로 매각됐다. SK그룹의 비핵심·중복 자산 정리 전략에 따라 진행된 거래로, 한앤컴퍼니는 기존 세라믹 부품사업과 연계해 전공정 부품 포트폴리오를 한층 강화했다.

 

2024년 12월에는 특수가스 세계 1위 기업인 SK스페셜티 지분 85%가 2.7조원에 매각됐다. SK그룹이 미래 성장동력 투자를 위한 대규모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단행한 초대형 거래였다. 2025년 9월에는 SK에어플러스의 LCO2 사업부와 M15 자산이 1.3조원 규모로 유동화됐다. 글로벌 인프라펀드 브루크필드는 이미 M16 설비 인수 경험을 보유해 한국 반도체 산업용 가스 분야 확대 전략과 맞물린 투자였다.

 

사모펀드가 보유한 반도체 자산을 전략적 투자자(SI)가 인수하는 ‘PE→SI 엑시트’ 흐름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 기업의 전략적 가치와 성장성이 다시 조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2022년 3월에는 에이스에쿼티가 보유한 테스나 지분이 4600억원에 두산으로 넘어갔다. 두산은 전통 제조업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반도체 분야 확장을 선언하며 테스나를 첫 인수 대상으로 선택했다. 2023년 10월에는 알케미스트PE가 보유하던 오션브릿지 지분 33%를 TEMC가 653억원에 인수했다. TEMC는 글로벌 특수가스 공급망을 활용해 오션브릿지의 소재·부품 사업과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2025년 9월에는 한앤코가 보유한 솔믹스를 5400억원에 TKG태광에 매각했다. 솔믹스는 국내 전공정 부품을 폭넓게 공급하며 글로벌 칩메이커 인증을 확보한 기업으로, 사모펀드가 경영 효율화를 통해 실적을 크게 개선한 대표 사례다. TKG태광은 기존 화학·신발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반도체 분야로 사업 전환을 추진하며 솔믹스 인수를 결정했다.

 

보고서는 AI와 고성능 컴퓨팅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반도체 산업이 명확한 구조적 성장 사이클에 진입해 있다고 분석했다. 기술 미세화와 패키징 고도화는 전공정 소재·부품·가스의 중요성을 더욱 높이고 있으며,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톱티어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투자자 관심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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