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험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인구 변화’에 대한 과도한 우려보다는 산업별 노동수요 구조를 면밀히 진단하고 ‘세대교체’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시점을 정책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길은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산업연구원이 개최한 ‘인구변화 대응 산업전략 포럼’에서 “인구 문제는 고정된 재난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성격이 달라지는 현상”이라며, “기업이 노동공급 감소를 과도하게 예상해 일자리를 선제적으로 줄이면 자기실현적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 감소=경제 침체” 통념은 절반만 맞다
길 연구위원은 인구 감소가 곧바로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기존 통념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통적 거시경제 모델은 ‘사람 수=생산’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어 인구 감소를 기계적으로 성장 둔화로 연결시키지만, 실제 데이터를 보면 최근 20~30년간 인구 증가율이 낮은 국가일수록 오히려 1인당 GDP 성장률이 높게 나타나는 흐름이 관찰된다는 것이다.
그는 “고령화가 빠른 국가일수록 자동화·기술도입을 적극 추진해 TFP(총요소생산성)를 끌어올리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디어·기술·무역을 통한 혁신 도입 등 성장 경로가 다양해진 만큼 단순히 인구 수만으로 성장률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생산가능연령 22~72세…고령층 노동공급 충분
길 연구위원은 한국 노동시장이 15~64세라는 기존 생산가능연령 정의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국세청 근로소득 자료를 보면, 60대 후반·70대 초반까지 일하는 인력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한국의 유효 노동연령은 22세에서 72세로 보는 것이 현실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의 문제는 ‘노동 공급부족’이 아니라 ‘노동 수요의 질과 구조적 미스매치’라고 진단했다. “전체 고용자 수는 늘고 있지만 고용의 질이 낮아 노동공급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 부족보다 노동 수요 측면의 문제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향후 5년간 산업별로 ‘세대교체 인력수요’가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분야가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남성 노동자의 경우 운송·설비·정제업, 제조업 기술직 등에서 고령층 비중이 높아 대규모 은퇴가 예상되고, 여성은 사회복지·의료·교육 등 서비스 분야에서 세대교체 압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길 연구위원은 “세대교체는 기업이 생산기술·투자전략을 바꿀 수 있는 결정적 시점”이라며, “인구 감소를 이유로 기업이 과도하게 축소 전략을 선택하면 고용 기반이 약화되고 내수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구 감소 이유로 내수↓…일본 실패서 교훈을
그는 일본의 대응 실패를 한국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일본 기업들은 1990년대 이후 인구 감소를 이유로 내수 축소를 확신하고 생산시설을 대거 해외로 이전했다. 그 결과, 해외 공장의 이익은 국내로 환류되지 않고 현지 재투자에 머물렀으며, 노동자 임금 총액은 정체돼 소비도 부진해졌다.
기술·IT 인력 육성도 지연되면서 최근에는 “AI를 도입하고 싶어도 개발할 청년이 없다”며, 인도 유학생 유치 등 외국인 인력 의존이 확대되고 있다.
길 연구위원은 “한국은 노동시장 구조조정 경험이 많지 않아 세대교체 과정에서 일본식 오버슈팅이 벌어질 위험이 있다”며, “막연한 인구 공포가 기업 의사결정에 반영되지 않도록 정확한 진단과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술·인력 전환시점 ‘불일치’ 발생 산업에 주의

그는 자동화와 로봇 기술이 도입되는 속도와 노동자 은퇴 속도 사이에 ‘시간적 불일치’가 발생하는 산업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를 들어 육상 운송업은 자율주행 기술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상당수가 50~60대에 집중돼 기술이 먼저 도입되는 산업으로 평가된다. 반면 사회복지·요양서비스는 물리적 돌봄 로봇 개발이 더디고 수익성 한계로 민간 기술투자가 부족해 노동자 감소 속도가 기술도입 속도보다 빠른 산업으로 나타난다.
길 연구위원은 “기술 변화와 인력 변화의 시점이 어긋나면 특정 산업에서 갑작스러운 인력 공백이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산업 운영의 안정성뿐 아니라 국민 생활에 직결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령층 비중이 높은 산업일수록 청년에게는 고소득·핵심 기술 일자리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전자·반도체, 자동차, 화학, 철강, 조선업 등은 청년층의 선호도가 낮지만 실제로는 상위 10% 고소득 일자리가 몰린 대표 산업이다. 그는 “세대교체가 발생하는 산업에서 청년 고용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수 있도록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야 한다”며 “왜곡된 인식이 노동시장 오버슈팅을 막는 데 정부·정책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길 연구위원은 “한국은 고령화가 빠르지만 여전히 ‘젊은 중년층’이 두텁게 존재하는 나라”라며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했다. 이어, “세대교체는 위기가 아니라 생산성과 산업 구조를 개선할 기회”라며 “청년이 고소득·핵심 일자리를 이어받는 선순환이 가능하도록 산업별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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