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의 YUZ미술관에서는 아주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에 맞춰 뉴욕주립대학교 상하이 분교(NYU 상하이)에서는 ‘인간+욕망+기계’라는 제목으로 지난 11월 11일부터 13일까지 17명의 연사 및 토론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컨퍼런스도 열렸다. 올해 11월 15일부터 내년 3월 1일까지 이어지는 이 전시는 바로 ‘기계 생명체(Anima Machines)’ 작업으로 유명한 최우람 작가의 개인전 ‘오디세이(ODYSSEY)’다.
특히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최우람-작은 방주’의 여러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눈길을 끈다.
중국에서 최우람의 기계 생명체 작업에 대한 관심이 깊은 것은, 중국이 AI와 로봇 산업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는 듯하다.
최우람은 일찍이 “기계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자연계에 존재한다. 기계들은 인간의 욕망을 근본 에너지로 삼으며, 오늘날까지 진화를 거듭해 왔다”고 천명했다. 그는 기계를 비생명적 장치가 아니라 욕망을 매개로 움직이는 유기체로 사유하며, 그 긴장을 통해 기계와 생명의 관계를 서사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기계 생명체의 탄생과 도약=1988년, 기계와 생명체를 결합한 기계 생명체를 공개한 순간부터 그는 미술계의 시선을 끌었다. 당시 그의 등장은 독보적이었고, 새로운 예술적 실험과 형식으로 평가를 받았다. 이후 2006년 일본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의 개인전 ‘도시 에너지’와 2008년 영국 리버풀 비엔날레 등을 통해 국제무대에 소개되면서 그의 작업은 국제적 인지도를 넓혔다.
이어 2022~202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최우람-작은 방주’를 통해 국내 미술계에서 그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그리고 중국 상하이 YUZ미술관 대규모 개인전 ‘오디세이’로 그는 세계 무대에서도 중량감 있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최우람의 작업 시기는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 실험 시기’(1998년~2001년), ‘기계 생명체 도약기’(2002년~2011년), ‘재료와 형태의 확장 시기’(2012년~2021년), 그리고 ‘기계 생명들의 회집체 시기’(2022년 이후)이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는 ‘초기 실험 시기’로, 첫 개인전 ‘문명∈숙주’(1998)와 두 번째 개인전 ‘170개의 박스로봇’(2001)을 선보인 시기다. 이때 작업은 테크노디스토피아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인간의 욕망을 의식적으로 기계적 형태로 외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결과로 보인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는 ‘기계 생명체 도약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작가와 기계 생명체가 국내외에서 폭넓게 알려진 시기로, 테크노디스토피아적 기조에서 벗어나 기계가 인류의 동반자로 등장한다. 그는 이때부터 ‘기계-생명’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으며, 현시대에 실존하는 생명체처럼 보이게끔 다양한 생물학적 정보를 함께 제시했다.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기계 생명체가 동식물을 연상시키는 단일체로 나타나는데, 이를테면, ‘울티마 머드폭스’(2002)는 물고기, ‘녹스 펜나투스’(2005)는 새, ‘제트 히아투’(2004)는 상어, ‘우나 루미노’(2008)는 꽃, ‘익센타 램프’(2013)는 파리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 기계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전파나 에너지를 먹는 것뿐만 아니라, ‘어바누스’ 시리즈처럼 다음 세대를 탄생시키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무기물로서의 기계와는 다른 생명체의 특질이다. 특히 그의 다수 작업이 ‘숨 쉬는’ 움직임을 보여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호흡과 생명력은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다. 기계 생명체의 영문명인 ‘anima machines’에서 ‘anima’가 라틴어로 숨결, 호흡을 뜻한다는 사실은 작가가 생명과 호흡의 연관성에 주목했음을 알려준다. 예컨데,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2008)는 갈비뼈 혹은 갑각류의 껍데기를 연상시키는 구조를 들썩이며 커다란 숨을 뿜어내는 것으로 움직임을 시작하고, 바다사자를 닮은 기계 생명체 ‘쿠스토스 카붐’(2011)은 들숨에서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가 날숨에서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내려가며, 실제 호흡과 같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확장과 회집체=2012년부터 2021년까지는 ‘재료와 형태의 확장 시기’로, 작업 궤도의 분기점이다. 작가는 더 이상 탄생 설화나 생물학적 정보 등 가상 설정을 만들지 않았고, 재료의 스펙트럼을 넓혀 이전과 결이 다른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전선으로 천사를 만들기도 하고(‘허수아비’), 궁전 같은 금빛 건축물 형상 내부에 비닐봉지가 떠다니기 하는(‘파빌리온’) 등 재료가 달라졌으며, 형태 또한 동식물을 닮은 기계 생명체에서 천사, 건축물, 회전목마, 로봇, 램프 등으로 다양해졌다.
눈여겨 볼 지점은 이전보다 상징적 측면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천사 형상을 한 ‘허수아비’(2012), 금빛 화려함과 비닐봉지의 일상성을 대비한 ‘파빌리온’(2012), 자기 꼬리를 삼키는 뱀 ‘오로보로스’(2012), 소용돌이처럼 피어오르는 ‘우나 누미노’(2012) 등은 그 형상에서 사회 권력과 인간의 욕망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이후로도 동식물형 기계 생명체는 이어지지만, 이 시점을 기점으로 작업이 상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울었음이 분명하다.

2022년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최우람-작은 방주’ 이후는 ‘기계 생명들의 회집체 시기’로 규정할 수 있다. 단일 개체로 전시장을 점유하던 이전과 달리, 이 시기에는 개별 작업이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군집을 이루는 회집체로 결합되어 거대 기계를 구성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검은 철제 프레임에 흰색이 칠해진 폐종이를 덧댄 35쌍의 노가 도열한 12미터의 거대한 ‘작은 방주’(2022)의 내부에는 파놉티콘 역할을 하는 ‘등대’와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는 ‘두 선장’, 우주 망원경 ‘제임스 웹’이 배치되어 있다. 방주 옆에는 연결되었는지 끊어진 것인지 모를 ‘닻’이 벽에 박혀있고, 뱃머리 장식인, 축 처진 ‘천사’가 천장에 매달려 있다. 한쪽 뱃머리에는 무한히 증폭되는 공간을 보여주는 ‘무한 공간’(2022)이, 반대쪽 뱃머리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문이 열리는 영상 ‘출구’가 상영된다(‘작은 방주’는 양쪽 어디가 뱃머리인지 알 수 없다.) 방주와 그 내부, 그리고 주변의 작업들은 각각 단일체로 의미를 지니면서도, 회집체가 됨으로써 하나의 거대 기계를 완성한다.
이러한 회집체 방식은 “방주는 결국 아무것도 싣지 못하는 공허한 욕망의 덩어리”임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낸다. 상하이 YUZ미술관의 ‘오디세이’는 이 전시의 중요 작업이 고스란히 재전시되고 있다. ‘작은 방주’뿐만 아니라, 머리가 없는 18개의 밀짚맨이 지름 4.5미터 원판을 떠받치는 ‘원탁’(2022), 연꽃과 수레바퀴 형상를 띤 ‘샤크라 램프’(2013),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서히 피고 지는 거대한 붉은 꽃 ‘빨강’(2021) 등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욕망은 최우람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뚫고 나와 기계 생명체로 우리 앞에 놓인다. 그가 보여주는 우리의 욕망은 금빛 건축물이며, 자기의 꼬리를 먹는 뱀이며, 머리를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밀짚맨이다. 앞뒤가 분간되지 않는 방주이고,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는 두 선장과 제임스 웹이다. 욕망은 무한히 증식하는 공간과 빠져나갈 수 없는 출구를 만든다. 욕망은 결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아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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