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은 기업을 위한 여러 가지 명목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의 R&D 지원사업, 중소벤처기업부의 각종 창업 지원사업,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창작자 지원사업 등 각 기업의 상황에 맞는 여러 가지 지원이 국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런 국가·공공기관 등의 지원사업은, 개개의 사업마다 구체적인 접근은 다르지만 크게 ▲지원사업 선정 및 자금 지급 ▲중간 평가 ▲결과 평가 ▲이의 제기에 대한 심의의 4단계로 나눠져 있다. 대개의 사업체의 경우, 일단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 지원 기준에 맞는 스펙을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 필요서류는 어디서 발급받아야 하는지도 깜깜이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브로커’들이 개입하는 때도 있다. 기업에 보조금 또는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국가·공공기관 사업이 있으니, 지원을 도와주겠다고 대개 접근한다. 그리고 자신의 도움으로 지원금을 받게 되면, 성과보수로 일정 부분을 자신에게 떼어 달라고 제안한다. 자금에 목마른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솔깃한 제안이다.
당연히 문제가 있다. 형사적인 책임은 둘째치고, 지원금을 받은 기업은 그 지원금의 실제 지출명세를 제출해야 하고, 제대로 지출했는지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공공의 돈이 들어간 이상 당연한 과정이다. 기업은 지출해서는 안 되는 항목에 지출했으면, 그 지출액수를 다른 돈으로 메우거나 다른 계정으로 회계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이 나중에 부정회계 처리로 드러나거나 사업부실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지원금이 환수 조치되고, 그 결과 회사가 문을 닫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필자는 모 기관의 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그 기관은 사업단계에 따라, 사안에 따라 그때그때 평가위원을 달리 구성한다. 평가위원은 변호사나 회계사가 위촉되는 경우도 있고, 관련 기술 분야의 전문가나 관련학과 교수가 위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후평가, 이의신청에 대한 평가 같은 경우 변호사나 회계사의 역할이 필요할 확률이 크고, 기술평가나 사업성 평가의 경우 해당 업무를 직접하고 있는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다.
평가위원으로 일하면서 있었던 일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경험을 바탕으로 원론적인 관점에서, 조심하고 주의해야 할 일 몇 가지 사항을 소개한다.
어떤 기관도 지원받은 모든 기업이 전부 다 성과를 달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에 목표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이 성실했다면 지원한 돈을 환수하지는 않는다.<이미지=이미지투데이>
첫째, 지원사업에 참가하고 승인을 받았을 때 정해진 조건을 최대한 지켜야 한다. 기업이 해당 사업수행을 하기 위해서 꼭 진행해야 할 일, 만들어야 할 장부와 노트, 정리해야 할 회계자료 등이 그것이다. 처음에 정해진 조건을 불가피하게 성취할 수 없는 경우라면, 합당한 범위에서 조건의 변경을 시도해야 한다. 한계를 인정하고 사업목표를 다시 설정하고,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내용의 변경이나 축소를 할 수 있는지는 해당 사업의 내용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목표가 축소 달성될 것으로 보이는데도, 많은 기업이 사업내용의 변경·축소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평가위원들이 해당 사업성과를 평가할 때, 치명적일 수 있다. 평가위원들은 어쨌든 정해진 룰에 따라 객관적으로 수행한 사업을 평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규정이나 지적사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지원사업의 경우, 지원기관에서 지원받는 기업에 지킬 것을 요구하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그와 별도로 사업수행을 평가받으면서, 평가위원회나 기관에서 시정이나 보충할 것을 요망하는 지적사항이 존재한다.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으면 바로잡으면 되고, 지적사항이 있으면 수정하면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하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기업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예시하자면, 기관은 A라는 조치를 할 것을 요구했는데, 기업은 B나 C라는 조치를 하고 나서 필요한 조치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말한다. 필요한 조치와 유사한 조치는 다르다.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재를 했을 때, 억울하다고 이의신청을 하면 기관과 위원들로서는 난감할 따름이다.
셋째, 거짓을 말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서 개발되지 않은 기술을 개발했다거나 다른 업체에서 사 온 기술을 본인이 개발했다고 보고서를 제출해도, 대부분은 진실이 드러난다. 평가위원은 전문가들이다. 유사한 사례에 대한 경험이 매우 많으므로 회계적, 법률적, 기술적인 문제의 포인트를 바로바로 찾아낸다. 거짓으로 둘러대다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제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넷째, 어떤 기관도 지원받은 모든 기업이 전부 다 성과를 달성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처음에 목표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이 성실했다면 지원한 돈을 환수하지는 않는다. 이른바 ‘성실성’이라는 지표다. 그런데 성실성 같은 비계량적인 요소를 외부자인 평가위원이나 기관에서 확인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추상적인 지표인 성실성은 결국 외부에 드러난 요소와 단편적인 결과들을 더 해서 평가할 수밖에 없다. 즉 필요한 사항을 제때 이행했느냐가 기업의 사업수행 성실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필요한 검사를 받았는가, 지정된 실험을 했는가, 기관에서 요구한 사항을 이행했는가 등을 종합해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 말한 네 가지는 어떤 사업을 수행하던 꼭 지켜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본 평가위원들은 대개 친기업적이다. 웬만하면 기업의 처지에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도 ‘최소한’이 갖춰졌을 때의 일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로펌 고우 고윤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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