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는 법 개정 권고…업무와 재해 ‘상당인과관계’ 증명책임은㊦ 

[업무와 재해 ‘상당인과관계’ 증명책임은㊦]산재보험법 제37조는 업무상 사고와 질병, 그리고 출퇴근 재해로 구분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관련 조항이 정한 요건, 가령 근로자의 재해가 ‘업무상 사고’에 해당하는 요건인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업무나 그에 따르는 행위를 하던 중 발생한 사고”이거나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 요건인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因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이라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건의 쟁점과 대법원의 판단=그런데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에는 “다만,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相當因果關係)가 없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재해로 사망한 근로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에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신청한 사건에서, 이 단서조항을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 2017두45933, 선고일자 2021.09.09.) 다수의견(9명)은 “산재보험법상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분배하거나 전환하는 규정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반면 반대의견(4명)은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요건 가운데 본문 각호 각목에서 정한 업무관련성이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이를 주장하는 자가 증명하고 단서에서 정한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에 대해서는 그 상대방(근로복지공단)이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조항은 본문에서 업무상의 재해의 적극적 인정요건으로 인과관계를 규정하고 단서에서 그 인과관계가 상당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전체로서 업무상의 재해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상당인과관계를 필요로 함을 명시하고 있을 뿐,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전환하여 그 부존재에 관한 증명책임을 공단에게 분배하는 규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수의견은 산재보험법상 진폐 등에 관한 규정, 공무원 연금법상 공무상 재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또는 보훈보상대상자 지원에 관한 법률상 직무수행 등을 원인으로 하는 각종 급여청구에 대한 부지급처분을 다투는 항고소송에서도 대법원은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은 원칙적으로 주장자 측에 있다고 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 사건 단서조항에 따른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요건에 관하여만 공단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의 부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산재보험법상 진폐 등에 관한 규정 및 관계 법령들에 따른 재해보상제도의 전반적인 체계와 조화되지 않고 입법자가 전혀 예정하지 않았던 상황을 초래하므로 수긍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대의견은 법률요건분류설에 따라 원칙적으로 본문이 정한 사항에 관한 요건사실은 그 법률효과를 주장하는 자가, 단서에서 정한 사항에 관한 요건사실은 그 법률효과를 다투는 상대방이 증명책임을 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사건 조항은 보험급여의 지급을 주장하는 근로자나 유족이 그 본문 각호 각목에서 정한 사유로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사망했다는 사실 등 업무와 재해 사이의 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하면 ‘업무상의 재해’로 간주되고 근로자 측에서 그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점까지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해석이다. 업무상의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다투는 상대방인 공단이 단서가 정한 업무와 재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정을 주장·증명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반대의견은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해 제정된 산재보험법의 입법목적을 근거로 “업무상 재해 인정의 핵심적인 요건이 되는 상당인과관계의 증명책임을 일방적, 전적으로 근로자에게만 부담시키는 것은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제도의 입법목적,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공단의 설립취지, 공단에 특별히 재해조사권한을 부여한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반대의견은 이러한 논리에 기반해 이 사건 사망 근로자가 입사한 날부터 발병전 8주간 주당 평균 69시간 이상 근무했고, 약 18일간 휴무일 없이 근로하는가 하면 발병전 8주간 휴무일이 6일에 불과한 점, 제1심 진료기록감정의는 소외인에게 대동맥류 파열을 일으킬만한 위험인자가 보이지 않고 업무로 인한 과로나 스트레스가 박리성 대동맥류 파열에 전적인 원인이 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위험인자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는 점을 들어 원고가 아들이 사망 이전에 객관적 과로 상태에 있었고 사업장 내에서 업무 수행 중 사망했다는 점을 증명했고 그가 이 사건 조항 제2호 (다)목에서 말하는 ‘그 밖에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추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대의견은 “이에 반하여 피고는 소외인의 사인인 해리성 대동맥류가 업무와 관련성이 낮은 자발성 개인질환으로서 그 업무로 인한 과로나 스트레스와 상당인과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뒷받침할 수 있는 반대사실을 증명하는데 성공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는 원심의 판단은 상당인과관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지적했다.

◇평가=근로자의 업무상 재해 입증 책임은 완화될 필요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권고를 통해 재해 근로자에게 업무과정에서 질병에 걸리거나 유해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근로를 제공했다는 점을 증명하게 하되 근로복지공단이 이를 부정할 경우 제기된 질병이나 사고가 업무와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은 공단측에 입증하도록 책임이 배분되는 형태로 관련 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해 왔다.

다수의견은 산재 인정에 있어서 입증책임을 전적으로 근로자가 진다는 기존 법원의 판례에 충실한 판결이다.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태도는 결과적으로 재해 근로자에게 고도의 전문성과 시간 및 비용을 요구하는 의학적 인과관계까지 증명해야 할 부담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