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 저작물 되려면 ‘기획’해 만들었다는 것을 회사가 증명해야 

어떤 회사원이 업무시간에 제품의 설명서를 작성했고 그 설명서가 동봉된 제품이 판매가 된 경우, 그 설명서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일단 설명서는 저작물이다. 그리고 우리 저작권법에서 저작권자는 원칙적으로 저작물을 창작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설명서가 개인의 저작물이라면, 당연히 그 설명서를 작성한 회사원 개인이 저작권을 가지겠지만, 회사의 업무로서 그 저작물을 만들었다면 저작권은 누가 가질까?

우리 저작권법 제2조 제31호는 ‘법인·단체 그 밖의 사용자의 기획 하에 법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자가 업무상 작성하는 저작물’을 업무상 저작물이라고 규정하고, 같은 법 제9조 본문은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되는 업무상 저작물의 저작자는 계약 또는 근무규칙 등에 다른 정함이 없는 때에는 그 법인 등이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업무상 저작물이라면 저작권은 그 저작물을 직접 만든 회사원이 아니라 회사가 가지게 된다.

업무상 저작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법인 등의 사용자가 저작물을 만들기 위한 기획을 할 것 ▲저작물의 작성자는 그 법인과 고용관계에 있는 사람일 것 ▲업무로 저작물을 작성했을 것 ▲저작물이 법인 등의 명의로 공표가 될 것(단, 컴퓨터 프로그램은 공표가 불필요) ▲법인 등의 사용자와 저작물의 작성자인 고용인 사이에 해당 저작물의 저작권 귀속에 대해 다른 특약이 없을 것 등이다.

여기서 기획이란 법인 등이 저작물의 작성을 구상하고 그 구체적인 제작을 업무에 종사하는 자에게 명하는 것을 말한다. 저작물에 대한 아이디어 구상부터 실제 작성에 대한 지시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법원은 여기서의 기획은 명시적은 물론 묵시적으로도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직접 저작물을 만든 회사원의 입장에서는 회사에서 명시적으로 지시하지 않은 것인데도 업무상 저작물로 분류돼 회사에 저작권이 넘어간다면 상당히 억울할 수 있다. 따라서 ‘묵시적 기획’은 엄격한 조건하에 인정되는 것이 형평에 맞는데, 최근에 이 묵시적 기획의 판단기준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안은 소프트웨어 개발, 공급, 판매업, 수치지도 제작업 등을 주된 사업목적으로 하는 법인에 입사해 근무하던 직원이, ‘리습(LISP)’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해 수치지도(각종 지형공간정보를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일정한 축척에 따라 디지털 형태로 나타낸 것)의 제작·편집을 자동화하고 오류를 검수하는 기능을 지닌 프로그램들을 개발·사용하다가 퇴사했다. 해당 사원은 퇴사 후 회사에 프로그램의 사용을 중지할 것을 요청했는데, 회사가 계속 프로그램을 사용하자 ‘프로그램 저작권 침해금지 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묵시적인 기획이 있었다고 하기 위해서는 위 법 규정이 실제로 저작물을 창작한 자를 저작자로 하는 같은 법 제2조 제2호의 예외규정인 만큼 법인 등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현출된 경우와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의사를 추단할 만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대법원 2010. 1. 14. 선고 2007다61168 판결 등 참조).

즉 이 사건의 경우 법원은 회사가 일정한 의도에 기초해 이 사건 프로그램들의 작성을 구상하고 그 구체적인 제작을 업무에 종사하는 원고에게 명함으로써 이 사건 프로그램들이 개발됐다고 보기 어려워, 해당 프로그램은 업무상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대가 없이 해당 프로그램을 사용한 회사는 원고의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 돼 약 3900만원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했다.

그러면 업무상 저작물과 관련해서, 회사는 어떠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첫째, 회사의 입장에서는 해당 프로그램이 ‘기획’되어 만들어졌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업무를 위해서 특정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이뤄진 경우, 그 개발과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근거를 남겨 놓는 것이 중요하다. 이메일, 보고서 등 회사의 명시적 지시가 드러나 있는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가능하다면 근로계약서나 특약으로 업무상 저작물에 관한 저작권 귀속 조항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일정한 보상을 해줘야 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하자. (중기이코노미 객원=로펌 고우 고윤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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