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소득↓…‘거지방’과 전당포로 가는 2030

거지방서 허리띠 졸라매고 아끼던 카메라는 전당포 ‘눈물겨운 사투’ 

 

“도서관에서 틀어박혀서 나오지 마세요.”

이른바 ‘거지방’이라 불리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참여자가 시간 날 때마다 할 수 있는 부업 알바 자리를 묻는 말에 나온 답변이다. 교통비도 ‘금값’인 요즘 같은 시대에 확실하지도 않은 부업 알바 자리를 찾느라 전화비·교통비 쓰지 말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도서관에서 ‘지식’을 쌓는 편이 미래를 위해 낫다는 조언이다.

최근 외식 물가뿐만 아니라, 전기·가스비에 이어 버스비 등 대중교통 요금까지 줄줄이 인상되면서 서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이에 ‘짠 내 나는 절약’을 실천함으로써 줄어든 ‘실질소득’을 메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거지방이 유행하는 이유다. 이뿐만 아니라, 사라진 줄 알았던 ‘전당포’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20~30만원 이하의 소액이라도 대출하기 위해 노트북, 카메라 등을 맡기는 젊은 층이 전당포로 발길을 향하기 때문이다.

실질소득 줄어 ‘식비’에 돈 안 쓴다…교통·주거↑, 육류·과일↓

최근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실질 국민소득은 줄어들었다. 올 6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국민계정(확정) 및 2022년 국민계정(잠정)’에 따르면, 2022년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전년 대비 0.7% 감소했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미 달러화 기준 3만2886달러를 기록해 전년보다 7.4% 줄었다. 총저축률 역시 전년(36.5%)보다 2.4% 하락했다.

올해도 전망이 밝지는 않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1/4분기 국민소득(잠정)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올 1/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3% 성장해 간신히 역성장을 면했다. 실질 국민총소득(GNI)의 경우, 작년 4분기 대비 1.9% 올랐지만 환율 변동에 따라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글로벌 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아 불확실한 상황이다.

최근 들어 경기가 호조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계속되는 대내외 불확실성에 따라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생활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이 내놓은 ‘2023년 1/4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505만4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4.7% 증가했지만, 가계지출은 388만5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 대비 11.1% 늘었다.

지출 품목을 살펴보면, 음식·숙박(21.1%), 교통(21.6%), 오락·문화(34.9%), 주거·수도·광열(11.5%)은 증가했고, 식료품·비주류 음료에 대한 지출은 2.9% 감소했다. 특히 육류(-6.6%), 곡물(15.1%), 과일 및 과일가공품(-4.2%), 신선수산동물(-6.6%) 등이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본격적으로 풀리면서 바깥 활동이 급증한 데 따라 관련 품목지출은 늘어난 반면, 이에 따른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가정 내에서 기본적으로 소비해야 할 식비와 같은 기본 품목에 대한 소비는 줄인 것으로 보인다.

불투명한 미래, 눈물겨운 ‘사투’…거지방·전당포 체험해 보니

경제 불확실성과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로 인해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미래가 불투명한 MZ세대는 고용불안까지 겹쳐 ‘짠 내’ 나는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혼자 짠내 나는 생활을 하기에는 외롭고, 자칫 우울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타난 모임이 일명 ‘거지방’이다. 거지방은 ‘동질감’ 있는 사람들 간 ‘위로 및 격려’를 서로에게 해주며, 현명하게 ‘돈을 안 쓰는 방법’을 공유한다. 또한 이런 짠 내 나는 팁을 알려준 멤버에게는 칭찬을, 불필요한 소비를 한 멤버에게는 가차 없는 질책으로 절약을 독려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셀수도 없을만큼 수많은 거지방들이 보인다. 많게는 몇천 명부터 적게는 몇십 명까지 참여 인원들이 있었으며, ‘초딩 거지방’, ‘직장인 거지방’ 등 종류도 다양했다. 어떤 거지방은 본방의 인원 과다로 인해 만든 중계방도 있었다. 별개로 만든 중계방의 참여 인원수도 12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본방에 입장하려면 SNS 본 계정으로 사전인증을 진행해야 했다. 실제로 짠 내 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철저히 ‘검사’하기 위해서다.

기자도 거지방을 체험해 보기 위해 1000여명이 모여 있는 방에 입장했다. 거지방에는 규칙이 있었다. 공과금 등 꼭 필요한 지출 이외에 5만원 이상의 불필요한 지출은 방장에게 정당한 사유와 함께 지출 승인을 받아야 했다. 지키지 않을 시 ‘패션거지’로 간주해 질책을 면치 못한다고 했다.

한 참가자는 “출근할 때 6000원짜리 에코백 메고 가요”라고 하자, 칭찬이 쏟아졌다. 단, 에코백이라 하더라도 경제와 환경을 위해 요일마다 매번 다른 에코백을 사용하지 말라는 충고도 이어졌다.

이처럼 거지방이 유행하는 이유는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쓴 사람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위안을 얻고, 짠 내 나는 생활을 이어가는 자신을 내보여도 창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낭비했다는 참가자들을 향해 해학 섞인 농담으로 절약에 대한 동기부여를 끌어올려 주는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다.

게다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절약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과 모여 관련 잡담을 나눌 수 있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 뜻하지 않은 ‘짠테크’ 아이디어로 소소하지만, 용돈을 벌 기회와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거지방과 달리 요즘 청년들의 아픈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소도 있다. 바로 ‘전당포’다. 불경기라는 현 상황과 맞물려, 90년대 TV 드라마에서나 나왔음 직한 전당포가 최근 들어 다시 뜨고 있다.

물건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는 사금융업의 일종인 전당포에 MZ세대의 문의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은행권에서 대출받은 청년들이 신용조회를 하지 않는 전당포가 그나마 추가 대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전당포로 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계대출 상황은 심각했다. 올 4월 한국은행이 내놓은 ‘가계신용 누증 리스크 분석 및 정책적 시사점’을 보면, 코로나19 이후 극심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주택가격의 빠른 상승률에 따라 가계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했다. 특히 202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신용비율은 105.1%로 이미 성장을 둔화시키고, 위기 발생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요즘 MZ들이 찾는 전당포의 모습은 어떨까. 최근의 전당포를 살펴보면, 과거 TV 드라마에서 봤던 전당포와는 사뭇 다르다. 방문은 물론이고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상담이 가능하며, 금과 명품부터 디지털기기, 부동산까지 모든 품목을 다루고 있었다. 게다가 어두컴컴한 낡은 건물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도로 한복판에 깔끔하면서도 트렌디한 외관으로 리모델링한 전당포가 적지 않으며, 프랜차이즈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중기이코노미와 통화한 서울의 한 전당포 관계자는 “명품 시계, 명품 가방, 금, 주얼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한다. 단, 가방을 맡기려면 영수증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이자율은 법정이자율인 1.66%를 적용한다”며 신뢰성을 강조했다. 즉, 물건을 맡기면 브랜드에 따라 가격을 책정하고, 법정이자율만 매달 내면 된다는 것이다.

IT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한다는 경기도의 한 전당포 관계자는 “스마트폰, 카메라, 노트북을 주로 맡긴다”라며, “제품의 하단에 있는 모델명을 찍어 문자로 보내면 대출받을 수 있는 가격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라고 중기이코노미에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많지는 않지만, 20대 청년들이 물건을 맡기러 오기도 한다”며, “신용조회를 하지 않고, 이자율도 법정이자율로 책정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스마트폰의 경우 보통 20~30만원에 책정되고, 노트북의 경우 모델에 따라 따르지만, 보통 100만원 이내로 책정된다. 그 때문에 급전이 필요할 때 사용하고, 갚기도 수월하다고 판단해 단골 품목으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기자와 통화하는 중에도 해당 전당포 관계자의 휴대전화에서는 상담을 요청하는 문자 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전당포가 성행하고 있는 이유는 신용조회에 대한 부담이 없고, 금융권에서 더 이상 대출을 받기 힘들어진 청년들이 전당포를 찾기 때문이다. 거지방도 마찬가지다. 이 두 곳의 공통점은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청년들의 생계가 팍팍해졌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최근 정부는 만 19~34세 청년 중 총급여 7500만원 이하, 가구소득 중위 180% 이하의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도약계좌를 운영한다고 했다. 최대 금리는 6.0%다. 5년간 매월 70만원씩 납부하면 정부 지원금까지 합쳐 5000만원의 목돈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학자금 대출 상환과 생활비 등 고정지출이 있는 상태에서, 5년이라는 가입기간을 청년들이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하는 직원은 “저금리 대출과 같은 좀 더 실효성 있으면서 다양한 청년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김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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