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배당받는 한국형 ‘국민부펀드’ 만들자

공공재원으로 사회적 가치에 맞는 기업에 투자하고 배당금을 지급 

 

1980년대 영국과 노르웨이는 북해유전을 개발해 막대한 수입을 거두었다. 영국의 경우 그 수입을 마가렛 대처 정부가 주택 보조금 지급, 세금 감면 같은 정책으로 단기간에 소모해버리고 말았다. 반면 노르웨이는 미래를 내다보고 이 수입에 기반해 ‘국부펀드’를 만들었다. 현재 세계 최대 규모 국부펀드로 성장한 ‘노르웨이 정부연기금펀드’가 그것이다.

당시 두 나라의 석유 매장량은 비슷했는데, 40년이 지나 1인당 실질 GDP는 노르웨이 9만 달러, 영국 4만 달러로 노르웨이가 2.2배나 많다(2020년). 두 나라가 선택한 정책 차이가 시간이 갈수록 격차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영국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교훈 삼아, 국부펀드를 비롯한 ‘사회자산펀드’ 설립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다.

기본소득 위한 사회자산펀드 논의 활발=사회자산펀드란 ‘국가나 지자체가 공익적 목적에 수익을 쓰기 위해 공공자산을 활용해 만드는 기금 또는 투자기구’를 말한다. 사회자산펀드를 가진 국가는 이 기금을 운용해 다양한 국내외 주식, 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고 그 배당수익을 가져다 공공사업에 쓴다. 그런데 감염병 대유행 이후,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자산펀드를 만들자는 제안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존재하는 사회자산펀드는 대부분 국부펀드다. 국부펀드는 소유·운영 주체가 정부이고, 수익금 역시 정부가 결정하는 대로 쓰는 펀드다. 2021년 현재 전 세계에 133개 국부펀드가 운용되고 있다. 펀드의 재원으로는 주로 석유 등 천연자원, 국가 보유 외환자산 등이 활용된다. 현대적 국부펀드는 1953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가 각각 설립한 것이 시초인데 둘 다 국유 석유자원 수익으로 설립했다. 한국도 2005년에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를 설립했다. 한국투자공사는 한국은행으로부터 외환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하고 있으며 자산규모는 360조원, 세계 14위다(2022년).

사회자산펀드 중에는 수익을 특정 목적에 사용하기로 정해놓은 펀드도 있다. 1854년에 창립된 미국 텍사스 영구학교기금은 주정부 소유지에서 나온 수익으로 공립 초·중등학교를 지원한다고 주 헌법에 기금 목적을 규정해놓았다. 1957년 설립된 유럽사회기금은 유럽을 경제적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유럽 시민의 직업 훈련과 고용기회 증대에 투자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국에도 많이 알려진 미국 알래스카 영구기금은, 주가 소유한 석유자원을 원천으로 기금을 조성해 1982년부터 기금 운용수익을 연 1회 모든 알래스카 주민에게 배당한다. 배당금 액수는 매년 바뀌는데, 연평균 1인당 지급액은 현재가치 기준으로 200만원 정도다(1500달러). 알래스카 영구기금도 주 헌법에 수익 분배방식을 명시해둬서 집권정당이 바뀌더라도 손댈 수 없다. 천연자원 수익에 대해 주민들이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과거 한국의 한 방송사가 알래스카 주민들에게 왜 주민배당 제도를 운영하느냐고 묻자 한 아이가 “알래스카의 땅과 땅 아래 것은 주민들 모두의 소유니까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국부펀드와 달리 국민이 직접 기금의 소유·운영주체를 맡고, 수익도 국민에게 직접 배당하자는 주장이 있다. 이는 ‘국민부펀드’ 또는 ‘시민부펀드’라고 부른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는 2020년에 이러한 성격의 사회자산펀드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감염병 유행으로 심화된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이러한 ‘보편적 기본자산’을 도입해 미국 시민에게 일정 소득을 분배하자고 했다. 미국의 한 시민단체는 ‘미국연대펀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 제안에서 모든 국민은 펀드의 양도 불가능한 지분을 가지며 기본소득을 배당받는다. 재원은 조세, 기부금, 화폐 주조차익 등 다양하게 거론된다.

챗지피티 개발사인 오픈에이아이 대표 샘 알트만도 논의에 적극적이다. 그는 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에서 해마다 주식가치 2.5퍼센트씩 지분을 받는 ‘미국주식펀드’를 만들어 시민에게 배당금을 주자고 한다. 그는 이 방식을 통해 인공지능 혁명이 사회 불평등 심화로 이어지지 않게 하고 경제적 진보를 계속 해나가자고 한다.

모든 국민이 자본의 공동주인이 되자=이처럼 사회 불평등, 기술 진보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보편적 배당이 목적인 사회자산펀드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도 한국형 국민부펀드 논의를 시작하자. 기본 아이디어는 이러하다. 국가가 공공재원으로 거대기금을 조성해 사회적 가치와 목적에 따라 기업에 투자하고 그 배당금을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펀드의 지분을 가지며 이 지분은 양도, 증여, 상속이 불가능하다.

한국형 국민부펀드의 재원은 상속·증여세 등 조세수익, 국공유재산에서 발생하는 수익 등으로 마련한다. 펀드의 추구 가치가 현세대와 미래세대의 연대라는 점에서 상속·증여세를 포함한다. 또 샘 알트만의 제안처럼 대기업에 특별법인세 형태로 지분을 납부받아 펀드에 넣는 방법도 검토하자. 대기업의 성장은 기업 혼자 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정부 지원과 국민의 응원 속에 이뤄진 것이니, 그 이익 일부를 공유하는 것도 정당하다. 한편 정부가 기업에 지원한 연구개발(R&D) 비용을 기업 지분으로 교환해 펀드에 포함할 수 있다. 지금까지 기업이 공공의 지원으로 기술을 개발, 수익을 창출해도 공공은 이익을 분배받지 못했다. 이는 문제가 있다.

시작은 미천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펀드는 성장한다. 또 대한민국이 존속하는 한 영구히 지속될 것이다. 경제성장률에 따라 펀드 투자액이 늘고, 이 펀드가 혁신성장의 추진력 구실을 해 국민에게 돌아오는 배당을 점점 키울 것이다. 그러나 펀드가 단기수익률을 좇아선 안 된다. 기술혁신 잠재력이 있는데 자금이 필요한 기업,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 대한 책임)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을 골라 장기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투기 자본주의에서 혁신 자본주의로,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바꿔나가야 한다. [참고자료:권세훈, 한상범(2021), ‘사회자산펀드와 중소기업 지원전략’,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모든 국민이 자본의 공동주인이 되고, 그 자본을 공공선의 도구로 삼아 시장경제를 바꾸고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길. ‘K-국민부펀드’ 창설을 적극 검토하자. (중기이코노미 객원=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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