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영향·맥락을 차단한 화이트큐브의 목적은

속이 텅 비고 창이 없는 ‘화이트큐브’…전시공간의 두 얼굴㊤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새하얗다. 대부분 흰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일반 관람자는 이 하얀 전시공간이 지닌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는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원래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우리가 접하는 것 중에 원래 그런 건 거의 없다. 모두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고, 그것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이 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같은 전시공간이 흰 벽으로 구성된 것도 그 이유와 목적이 있다. 이렇게 속이 텅 비고, 창이 없는 흰색의 전시공간을 통상적으로 ‘화이트큐브(White Cube)’라고 부른다. 흰색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마찬가지로 화이트큐브라 부른다. 그렇다면 화이트큐브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시 공간의 탄생=‘갤러리(gallery)’하면 일반적으로 미술작품을 전시하는 장소를 떠올린다. 그래서 ‘패션 갤러리’나 ‘헤어 갤러리’, ‘디저트 갤러리’처럼 ‘갤러리’라는 명칭이 패션잡화점이나 미용실, 보석상, 카페 등의 상호로 쓰일 때 의아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갤러리라는 단어가 미술과 관련된 단어이기 때문에 상점의 분위기를 예술적으로 느끼게 하려고 이 단어를 상호에 사용했으리라 추측한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상점에 ‘갤러리’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것도 맞지 않다. 갤러리의 기원을 살펴보면, 상점의 상호로 사용하는 게 딱히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갤러리’가 그저 미술작품의 전시공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 단어는 15~16세기 유럽인이 신항로와 신대륙을 개척하면서 수집한 독특한 물건을 진열하는 공간을 일컫는 단어 중 하나였다. 그 당시 유럽인은 신대륙으로부터 희귀하고 진귀한 물건들을 가져와 유럽 전역에 유통했고, 귀족이나 사제, 왕족들 사이에서 그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수집한 물건들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자랑하기 위해 진열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공간이 갤러리, 분더캄머(wunderkammer), 카비네 퀴리오시테(cabinet curiosité) 등으로 불리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이국적인 보물, 동전, 서책, 과학기구나 실험기구, 동식물의 표본, 동물의 박제, 두개골이나 뼈, 지구본, 민족학적 표본 등 일상에서 보기 힘든 물건들로 가득했다.

따라서 그 당시의 이 공간은 수집한 독특하고 진귀한 물건을 전시하는 공간이었지 오로지 미술작품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어떤 독특한 물건들을 진열(전시)한 곳에 ‘갤러리’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기이하거나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렇게 권력층의 진귀한 물건들을 전시하던 공간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시기를 지나면서 대중적인 교육기능을 가진 공공공간으로 그 성격이 변했다. 왕권의 쇠퇴와 시민사회의 성장으로 근대적 전시공간의 효시인 루브르 박물관이 탄생한 것이다. 이것이 미술관(museum)의 시작이다. 하지만 권력층의 진귀한 보물들을 모아서 진열해 전시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미술관이 지닌 위상을 가지진 못했다.

현재의 전시공간이 형성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화이트큐브’다. 화이트큐브는 20세기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전시공간으로, 외부적인 영향과 맥락을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간의 성격을 지우려고 의도적으로 흰 벽의 텅 빈 공간을 만듦으로써 무성의 진공 공간처럼 느껴지게 했다. 이 공간은 오직 미술작품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끔 한다. 작품을 보는 시야를 철저히 작품의 미학적 특성에만 몰두하게 한다. 그래서 화이트큐브는 현재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전시공간 형태다.

그렇다면 전시공간으로 가장 좋은 형태가 화이트큐브인가? 이 공간이 가지고 있는 숨겨진 목적은 없는가? (계속, 중기이코노미 객원=안진국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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