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현장에 CCTV 설치하려면 근로자 동의를

대법, 동의없이 현장 비추는 CCTV 촬영을 ‘저지’한 것은 정당행위 

 

경기도 김포시의 출연·출자기관에서 기능직으로 장애인 이동차량을 운전하는 A씨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관리자가 그가 운전하는 차량의 블랙박스를 조수석 창쪽에 설치해 운전석을 비추도록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블랙박스는 차량사고 발생시 사고의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장치다. 회사는 “운전자와 이용자와의 분쟁으로 민원이 제기될 경우 사실관계 파악이 목적”이기에 근로자 감시가 아닌 만큼 근로자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블랙박스를 조수석 창쪽에 설치해 운전석을 비추면, 노동자 A씨의 근로제공 과정에서의 개인정보가 그대로 노출될 수 있기에 회사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정보주체인 A씨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노동현장에서는 폐쇄회로TV(CCTV) 같은 영상정보처리기기 설치를 두고 노사의 분쟁이 자주 발생한다. 사용자는 일반적으로 사업장의 도난 방지와 화재 예방 등 안전을 위한 목적으로 설치를 추진하고 하지만, 정보주체인 노동자의 처지에서는 회사가 목적을 벗어나 수집된 개인정보로 근태를 감시할 것이라 우려한다.

대법원 제3부는 지난 6월29일 타타대우상용차가 공장 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CCTV를 설치에 항의하며 CCTV 촬영을 막자, 회사가 노조위원장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취지로 판결(대법 2018도1917)했다.

사건의 경위=원고는 타타대우상용차로 트럭과 버스를 제조하는 회사다. 피고인들은 원고회사 소속 노동자로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다. 원고는 2013~2015년에 걸쳐 자재 도난과 공장 외벽 화재 등의 손해를 입었다.

이에 원고는 2015년 8월 군산공장 내 시설물 보안 및 화재감시 목적으로 공장 외곽 울타리와 출입문, 출고장 등 주요 시설물에 CCTV 카메라 설치공사를 시작했다. 피고인들은 2015년 10월 회사 측에 “노동자들의 동의 및 노조와 협의 없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취지로 항의하며 공사중단을 요구했다. 회사는 노동자 동의가 필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2015년 10월말 설치공사를 완료했다.

피고인들은 2015년 11월 원고회사의 CCTV 카메라 51대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씌워 5일간 촬영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같은 방법으로 2015년 12월말경 같은 장소에서 CCTV 카메라 중 12대의 촬영을 9일간 막았고, 2016년 1월초 CCTV 카메라 중 14대의 촬영을 22일 동안 막았다.

재판부의 판결문에 따르면, 이 사건 CCTV 카메라 총 51대 중 32대는 고정형으로 공장용지의 외곽출타에 설치돼 공장부지 외부와 내부를 촬영했다. 나머지 19대 중 16대는 공장부지내 주요 시설물에 설치돼 회전이나 줌기능이 있고, 근로자들의 직간접적 근로현장이 촬영 대상에 포함된다. 출입구에 설치된 3대는 근로자들의 출퇴근 장면을 촬영하고 사람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의 개인 영상정보가 수집된다.

이 사건 회사는 CCTV 카메라 설치에 관해 노동자들의 동의를 받거나 노사협의회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사건의 쟁점=쟁점은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돼 업무방해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다.

원심은 피고인들이 원고회사의 CCTV 카메라 촬영을 방해한 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인정했다. 원고회사의 시설물 보안 및 화재감시 목적의 CCTV 설치는 정당한 이익을 위한 행동이며, 그 설치과정에 근로자들의 동의 절차나 노사협의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그 업무가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 역시 원심과 동일하게 피고인들이 이 사건 CCTV 카메라의 촬영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들이 모두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를 구성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대법원 재판부는 회사가 정식으로 CCTV 작동을 시작한 후에 CCTV 촬영을 저지한 피고인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회사의 정당한 이익 달성이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한다 보기 어렵다”며, 그 “촬영을 방해한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고 판결했다.

판단의 근거=재판부는 위법성이 없어지는 정당행위의 요건을 정한 대법원의 판례(2000.4.25. 선고 98도2389 판결)를 법리로 제시했다. 지난 2000년 대법원은 판결를 통해, ①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②수단과 방법의 상당성 ③보호이익과 침해해익의 법익균형성 ④긴급성 ⑤그 행위 외에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을 갖춘 경우, 위법한 업무방해행위도 정당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고 그 요건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CCTV 카메라를 가동시키기 전이거나 시험운전 중인 상태에서 피고인들이 CCTV 카메라에 검정색 비닐봉지를 씌운 행위나 공장 외곽의 울타리를 비춰 실질적으로 근로자를 감시하는 효과를 가지기 어려워 보이는 32대의 카메라의 촬영을 방해한 행위는 이 사건 회사가 CCTV를 작동시키지 않았거나 시험가동만 한 상태여서 근로자들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침해되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을 들어 정당행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근로자를 직간접적으로 비추는 16대의 CCTV 카메라와 출입구의 3대의 CCTV 카메라를 가동한 이후 피고인들이 이의 촬영을 방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정당행위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개인정보의 수집과 이용에 관해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를 들어 피고인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CCTV 카메라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할 때 정보주체의 동의가 필요하다(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1호).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경우로서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 개인정보처리자는 CCTV 카메라 등을 통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6호).

재판부는 ‘명백하게 정보주체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개인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 권리가 제한되는 정보주체의 규모, 수집되는 정보의 종류와 범위,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지 못한 이유, 개인정보처리자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해 대체가능한 적절한 수단이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권리가 제한되는 정보주체가 다수인 점, CCTV 카메라 설치시 근로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점, 직간접적인 근로공간과 출퇴근장면이 촬영 당하는 것은 정보주체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에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점, 주간에 시설물 보안 및 화재 감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자료가 없는 점을 들어, 시설물 보안과 화재감시라는 개인정보처리자(회사)의 정당한 이익이 정보주체인 노동자의 권리에 명백하게 우선한다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사업장 내 근로자 감시설비 설치시 노사협의회 협의를 요하는 근로자참여법 제20조 제1항 제14호를 근거로 이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사측의 행위를 방해한 피고인들의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회사의 위법한 CCTV 설치에 대해 기본권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정당성과 카메라 자체의 훼손 없이 비닐 봉지를 씌워 임시적으로 촬영을 방해해 부당한 침해에 대응하는 한편 회사와의 협의는 이어가고자 해 수단과 방법의 상당성도 인정된다 해석했다. 또 재판부는 이후 피고인들이 작업현장을 찍는 16대의 카메라를 야간에만 작동시키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이 사건 회사가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그 제안을 거부했고, 피고인들은 14대의 카메라에만 다시 검정색 비닐봉지를 씌우는 등 피고인들의 행위가 보호이익과 침해이익 사이의 법익균형성도 갖췄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원고회사가 근로자 대부분의 반대에도 CCTV를 정식 가동해 정보주체의 의사에 반해 근로행위나 출퇴근장면 등 개인정보를 위법하게 수집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이러한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일단 그에 대한 침해가 이뤄지면 사후적으로 이를 원상회복하기 쉽지 않은 점을 고려해, 피고인들이 CCTV 카메라 촬영을 방해한 것은 그 긴급성과 보충성의 요건을 갖췄다고 정당성을 인정했다.

판결의 의의=그동안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산업현장에서 사업주가 화재예방·보안의 명목으로 일방적으로 CCTV 설치를 강행해 왔다. 이번 판결은 노동현장에서 사업주가 보안이나 화재예방의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하려 하더라도 작업현장을 비추는 경우 정보주체인 근로자의 동의가 명백하게 요구된다라는 점을 확인함과 동시에 노사협의회를 통해 근로자대표와 성실한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 일깨운다. (중기이코노미 객원=노동OK 이동철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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