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AM…제품 생산과정서 탄소배출량 낮춰라

EU 탄소국경제도…EU 수출규모 큰 철강산업만 10년간 3조 부담 

 

EU의 탄소국경제도(CBAM) 시행에 따른 한국 철강산업 부담이 앞으로 10년간 3조원에 달할 것이란 추산이 나왔다.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가 최근 내놓은 ‘CBAM 도입이 철강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CBAM 도입 이후 국내 철강부문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2026년 851억원 수준에서 점차 증가해 2034년부터 55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됐다.

CBAM은 EU가 탄소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수입품에 대해 EU 생산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EU 내부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으니, 수입품들도 탄소배출량을 확인한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EU가 탄소 감축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원이 규제를 피해 EU 역외로 이탈하는 현상, 이른바 ‘탄소누출’에 대한 대응이다.

CBAM은 지난 2023년 10월부터 전환기간이 시작됐다. 아직까지는 비용이 발생하지 않지만, 수입품의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신고해야 하는 의무는 이미 시작됐다. 신고된 탄소배출량을 토대로 202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증서 구매 의무가 발생한다.

당장은 모든 수입품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이 대상이다. 이 가운데 국내기업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은 철강과 알루미늄이다.

특히 철강에 대한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의 EU 수출규모가 가장 큰 품목이기 때문이다. 2023년 기준으로 6개 품목의 EU 수출이 46억 달러 규모였는데, 이 가운데 철강이 42억 달러를 차지하고 있다.

보고서는 “국내 철강산업은 조강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6위, 수출규모 기준으로 세계 3위의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주력산업이며, 국내 타산업의 중간재로서 다양하게 활용되는 전방연쇄효과가 큰 핵심 기간산업”이란 점도 강조했다.

철강산업 부담, 10년 뒤엔 연간 5000억원 넘어설 가능성

인증서 비용은 ①내재배출량(제품 생산과정에서의 탄소배출량) ②EU 배출권거래제도 내 무상할당량(탄소배출기업이 무상으로 배출 가능한 탄소량) ③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부담한 탄소비용에 따라 결정된다.

보고서는 철강품목을 대상으로 EU의 수입업자가 지불해야 하는 CBAM 인증서 구매비용을 추산했다. 한국과 EU의 내재배출량과 탄소가격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2023년 우리나라 철강 수출량(335만톤)에 대한 인증서 비용은 2026년에는 851억원 수준으로 추정됐다.

문제는 이 비용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2030년부터는 큰 폭으로 상승한다는 점이다. 2028년에는 1215억원으로 1000억원대를 넘어서고, 2030년에는 3086억원, 2032년에는 4301억원, 2034년에는 5589억원을 부담할 것으로 나타났다. 10년간 누적금액은 3조원을 넘어선다는 계산이다.

2030년 기준 인증서 비용 3086억원은 2023년 기준 EU 상대 철강 수출액 42억 달러의 약 5.4% 수준이다.

2030년 이후 비용 증가 폭이 큰 이유는 EU가 2030년부터 탄소배출권의 무상할당을 급격히 줄이고, 2034년에 유상할당 비중을 100%로 높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EU 역내기업의 탄소배출권 비용이 증가하는데 맞춰, 수입품의 인증서 비용도 함께 증가하는 구조다.

박경원 대한상의 SGI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제시한 비용은 CBAM의 도입으로 가장 큰 재무적 부담을 지닐 철강산업이 부담해야하는 인증서 가격만을 의미하며, 추후 철강 외에도 알루미늄 등 다른 산업이 부담해야 하는 인증서 비용과 이들 산업의 생산품을 중간재로 활용하는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까지 고려한다면, CBAM 도입으로 인한 산업계의 부담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탄소배출량 국제표준 설계에 정부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

보고서는 철강산업이 제조업과 서비스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비금속광물제품, 금속가공제품, 전기장비, 운송장비, 기계 및 장비, 건설업 등에서 철강제품에 대한 중간재 수요가 크다고 밝혔다.

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하는 전방연쇄효과를 한국은행의 투입산출표로 산출해보면, 철강산업은 1.52로 전체 산업(1.0)이나 제조업 평균(1.05)을 크게 웃돌았다.

또한 철강산업 수출의 생산 및 부가가치 유발효과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철강제품 수출을 통한 생산유발액은 약 101조원, 부가가치 유발액은 약 2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CBAM 본격시행으로 인해 철강업계 비용부담이 가중돼 생산활동이 위축될 경우, 다른 제조·서비스업 전반의 생산과 부가가치 창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CBAM 대응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철강 등 주요 제품의 내재배출량 자체를 낮춰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EU에 수출하는 주력 제조업의 저탄소 제품 라인업 구축의 중요성과 저탄소 제품의 국내시장 안착을 위한 정책 마련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EU 그린딜 산업계획,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일본의 GX와 같이 기업의 기술혁신을 견인하고 대대적 투자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주도의 산업경쟁력 강화 및 기술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2025년 이후 기업들은 EU 규정에 따라 탄소배출량을 보고해야하기 때문에 제품의 내재배출량에 대한 국제적 표준을 설계하는 과정에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연구주체에 따라 제품별 탄소배출량을 평가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우리 기업의 배출량 보고가 충실하지 않다고 평가되면 단계별로 불리한 기준을 적용받는 등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또 CBAM 인증서 구매부담을 낮추기 위해 우리나라의 무상할당비율을 낮추거나 탄소가격을 높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탄소가격이 지나치게 싸면 EU 역내기업의 탄소배출권 비용과의 격차가 커져, 인증서 구매비용은 더욱 높아지는 구조다. 국내 탄소비용과 EU와의 격차를 줄이면 인증서 비용을 줄어드는데, 그럼에도 보고서는 국내 탄소비용을 높이는데 반대의견을 피력한 것이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학 교수는 “CBAM 인증서 비용은 한국과 EU의 배출권 가격 및 무상할당 수준의 차이에 비례하지만, CBAM 대응 목적으로 무상할당 비중을 EU 수준으로 조정한다면 EU에 수출하지 않는 기업이나 CBAM 대상이 아닌 제품에까지도 부담을 급증시킬 수 있다”며, “EU가 무상할당을 축소해나갈 수 있는 것은 탄소누출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CBAM을 도입했기 때문으로 우리나라도 무상할당 비율 조정에 앞서 수입 철강재에 비해 국내 제품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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